어릴 적 ‘칠수와 만수’ 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개봉 년도가 88년 이니 기억에 초등학교 1년 이였는지 학교를 들어가기 전 이였는지 영화를 봐도 치고 부시는 헐리웃 영화의 멋진 액션씬이나 인상깊은 장면들만 기억에 남지 영화의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 나이였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나의 큰 형님은 학창시절부터 지독한 영화광이라 이 ‘칠수와 만수’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와서 입이 닳도록 얘기를 하고 기어이 비디오가 출시되자 빌려와서 또 보고 나중에는 TV에서 방영되자 또 보기까지 했다. 역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작은형님은 그 큰 형님의 열변에 세뇌가 되어서 같이 ‘칠수와 만수’ 라는 얘기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늘어놓았다. ‘칠수와 만수’ 하면 세뇌된 내 기억에 형의 입을 빌려 아주 잘 만든 영화라는 점과 영화를 보며 쉴 새 없이 아버지에게 떠드는 형의 이미지, 영화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고 영화 속 ‘칠수’ 역을 했던 박중훈과 ‘만수’역의 안성기가 극장 간판 아래서 이야기 하는 장면이 어릴 시절 위로 오버랩 되어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나왔다.
큰 기대는 없었고 형에게 우연히 라디오 스타를 얘기를 하자 그 오래된 기억에 잠들어 있던 ‘칠수와 만수’를 다시 토해 놓으며 영화에 대한 기대가 넘쳐 나는듯했다.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은 몇 번 파트너로 같이 영화에 나왔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나보다. 물론 둘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영화들은 다들 멋졌다. ‘투캅스’가 그랬으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가 그랬고 형이 말한 ‘칠수와 만수’도 그랬다.
라디오 스타의 포스터를 보고 투캅스나 인정사정의 두 배우 보다는 칠수와 만수를 떠올리는건 라디오 스타에서 풍겨오는 올드한 느낌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가 영화에 그렇게 크게 기대감을 가지지 못한 것은 거기서 풍겨오는 올드한 느낌이랄까? 세련되지 못하는 느낌, 수수하다 못해 촌스런 느낌까지 주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감을 못 느꼈나보다. 어떡하다 놓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영화는 형님의 ‘칠수와 만수’ 얘기와 엄청난 기대감 덕으로 영화와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88년도 가수왕이지만 지금은 퇴물가수가 된 왕년의 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민수(안성기)와의 우정을 보여주는데 최곤이 지방 영월에서 라디오 DJ를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진행이 된다.
왕년의 스타지만 최곤은 아직도 자신이 스타라고 생각하고 그런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 거기에 그의 매니저 민수는 그런 그를 스타 대접을 한다. 그들은 영월에서 원주 방송국에서 사고를 치고 온 젊은 여자 PD 와 같이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극장 안은 울다가 웃기도 하고 영화에 금세 빠져 버렸다.
엔드 크래딧이 올라가면 빠져나가기 바쁜 우리나라 관객을 엔드 크래딧이 다 올라가기 까지 붙잡아 둘 정도로 영화에 빠지게 한 것은 물론 감독님의 깊은 연출과 그 눈물이 적다는 대 배우인 안성기도 울었다는 뛰어난 각본도 한 몫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배우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주역인 안성기와 박중훈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는데 정말 연기를 잘 했다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 속 그들은 연기가 아니라 꼭 그들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안성기의 능청스럽고 코믹한 연기는 ‘투캅스’나 그보다 더 오래전인 또 하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인 ‘개그맨’을 기억나게 했다.
박중훈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내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고 그간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는 것을 봤다고 20대에는 최곤처럼 인내심이 없었는데 그런 나를 반성하는 영화이기도 하다고 ... 그래서 인지 영화 속 박중훈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간의 흥행작이 없었던 그의 모습도 캐릭터에 녹아들어 간 듯이 고개숙인 최곤의 모습은 배우 박중훈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다.
그가 능청스럽게 코믹한 이미지를 보이며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 할 때는 “역시 박중훈!”을 연발하게 되지만 그가 소리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 숙인 최곤의 추락한 모습을 보일 때는 웃다가다 마음 한 구석이 뭉쿨하고 그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인터뷰에서 안성기씨는 이번 영화로 국민배우라는 이미지를 벗고 싶다고 했다. 그냥 수식어가 없는 배우이고 싶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면 왜 안성기씨가 우리의 국민배우일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제일 큰 강점은 한마디로 ‘향수’ 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왜 글 서두에 영화‘칠수와 만수’와 어린 시절 얘기를 풀어 놓았냐면 이 영화로 더불어 어린시절에 영화광 이였던 형에 대한 기억과 이 두 배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우리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있는 배우이다. ‘칠수와 만수’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십대들은 ‘투캅스’라는 영화가 그들의 어린 시절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
안성기와 박중훈이라는 배우는 우리 한국영화에 역사에 많은 기록을 남겨 주었고 그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관객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누구나 그들의 영화를 어린시절에 봐왔을 테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라디오 스타’ 라는 영화도 내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릴 때의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형에게 영화를 보러 가는 중에 왜 그렇게 기대가 되냐고 묻자 두 배우에 대한 것도 기대지만 영화 속 소재인 라디오라는 향수 때문에도 영화가 기대가 된다고 한다.
라디오에 대한 기억! 그 추억 때문에 더욱 영화가 다가왔다고 한다. 나에게는 어린시절 ‘칠수와 만수’의 장면이 오버랩 된 것처럼 형에게는 라디오와 여러 가지 추억을 안겨주었을 테고 또 다른 이에게 영월에 대한 이미지, 구수한 따듯한 고향에 대한 이미지도 다가왔을 것이고 다른 관객에게는 두 배우가 우리들에게 안겨준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었을 것이다.
영화속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라디오 프로가 인기를 끌자 영월 주민들이 공개방송을 할 때 다같이 모여 좋아했던 것은 그들 ‘최곤’과 ‘민수’ 그리고 그 라디오를 듣는 마을 주민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그 마을 주민이 좋아할 때 같이 영화에 몰입하며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우리와 함께 했다는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곤이 라디오 스타인 것처럼 그들은 진정 무비스타이다. 감독의 말처럼 두 사람 아니면 할 수 없는 영화는 보는 동안 많은 향수와 많은 것을 안겨준다. 그 배우들을 뒷받침 하는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고 완벽한 성벽처럼 영화의 완성도를 굳게 만들어 준다.
시사회장에 박중훈은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누워있었고 안성기는 주변에 서있었다는데 이 영화로 안성기도 중심에 들어서고 박중훈도 일어났으면 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온 후 최곤의 모습이 떠올라서인지 그런 말을 한 배우의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영화가 사람냄새 나는 따듯한 영화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닮아서인가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 최곤이 고개를 숙이고 미소짓는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라디오 스타’ 다시 그들을 일으키고 중심에 올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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