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별 거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참 호기심이 많았다. 그것이 온전히 내 힘만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것일 때는 더욱 더. 기껏해야 200, 300원 정도에서 놀았던 나에겐 500원이나 하는 휑드콘, 1000원이나 하는 커다란 투게휑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더 맛깔스럽게 보이고 가지고 싶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심심하면 보러가는 참 쉬운 일이 되어버린 영화관람도 어렸을 때에는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되어서야 1년에 한번 꼴로 가는 연중행사가 될 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던 "영화구경"이었다. 그만큼, 어렸을 땐 모르는 것이 많았고 그만큼 호기심도 곳곳에서 솟아났다.
영화 <아이스케키>는 이렇게 우리가 어렸을 때 그 많은 것들에게 추파를 던졌던 호기심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다. 컴퓨터는 아예 없었고 TV도 흔치 않던 시절인 6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하는 거라고는 나이에 걸맞게 끊임없이 늘어나는 유별난 호기심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유난히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내가 살던 시절은 상대적으로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을 수 있고, TV도 많이 볼 수 있는 시절이었지만 그 때도 나름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이 시절은 오죽했을까.
우리의 주인공 영래(박지빈)는 허구한날 동네 친구들과 시끌벅적 놀며 잘 씻지도 않는 전형적인 개구쟁이다. 영래의 어머니(신애라)는 밀수화장품 장사를 하는지라, 돈때문에 아줌마들과 싸우다 경찰에 걸려 문책을 받는 것도 부지기수다. 결국 이번에도 엄마의 친구인 춘자 아줌마와 된통 싸우다 경찰에 걸리고, 경찰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면서 벌금은 내야 될 거라고 다그친다. 영래는 슬슬 걱정되는 가운데, 춘자 아줌마가 술김에 흘린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영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울대를 나온 아버지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엄마의 어려운 형편도 그렇고, 늘 애비 없는 새끼라고 놀림받는 자신의 처지도 항상 불만이었던 영래를 기어코 아버지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서울까지 가기 위한 기차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영래는 결국 친구 송수(장준영)를 따라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를 찾아갈 기차값을 위해 영래는 열심히 돈을 벌지만, 어머니는 영래가 아버지에 대해 묻기만 하면 헛소리니, 죽었다느니 하면서 자꾸만 얘기하기를 피한다. 과연, 영래는 정말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재미를 가장 두드러지게 하는 일등공신은 바로 아역배우들의 연기다. 아니, "아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민망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저 "나이가 어릴 뿐인" 배우들이다. 그만큼 이 어린 배우들은 우리가 흔히 어린 배우들에게서 생각하기 쉬운 마냥 귀여운 모습, 혹은 심금을 울리는 눈물 연기, 혹은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연기의 범주를 벗어나, 정말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그대로 살아나게끔 하는 차진 연기를 보여준다. 주인공 영래 역의 박지빈 군은 예의 똘망똘망하고 착한 개구쟁이의 역할에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서 가지게 되는 심적 갈등도 충실히 소화함으로써 이제는 성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배우의 대열에 들어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박지빈 군 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어린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찰떡같이 마음에 착착 달라붙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배경이 전남 여수인 만큼 시종일관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하는데, 이 어린 배우들이 어찌나 사투리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지. 분명 이들 배우 모두가 전라도 출신인 건 아닐 텐데도 이들이 보여주는 사투리 연기는 과장되거나 억지스런 면 없이 귀에 착착 달라붙으니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이들의 연기에 덧입혀져 영화 속에서 디테일하게 발생하는 많은 코믹스런 상황에서도 어린 배우들의 시치미 뚝 뗀 표정 연기나 찰떡같은 사투리 악센트는 웃음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가 이들 각각의 캐릭터 또한 하나하나 개성이 넘쳐서 온전히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이렇게 유치하지 않고 알찬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말썽많고 아이답게 겁도 많으면서도 자신이 목표로 잡은 일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다부진 구석도 있는 영래, 늘 사람 좋게 영래 옆에서 단짝이 되어주지만 본의아니게 실수도 간혹 하는 착한 송수, 어차피 같은 초딩이면서 동네 큰형이라도 되는양 구역가지고 시비거는 승일이, 성적이 아무리 바닥을 깔아도 항상 유독 잘나온 체육 부분에만 자부심을 가지는 석순이와 늘 강아지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며(요 강아지 눈빛연기도 예사롭지 않다) 애정을 과시하는 석순이 동생 등 아이들의 캐릭터들 또한 저마다 재밌는 면모를 가지고 있어 이들의 연기는 더욱 다채롭고 흐뭇하게 다가왔다. 정말, 더 이상 어린 배우들을 단지 성인 배우들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적다하여 무작정 크레딧 뒷부분에 "아역"이라는 토를 달고 조연 취급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아역 배우들의 재기발랄한 연기 못지 않게 이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성인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늘 도시적인 여인 혹은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던 신애라는 이번 영화에서 밀수화장품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미혼모 역할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역시나 능청스런 사투리 연기와 함께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온갖 궂은 일과 심적 고통을 겪게 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대뜸 나서는 아들 앞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어머니의 모습이 참 많이 와닿았다. 아이스케키 공장 주임인 인백 역을 맡은 진구의 연기도 범상치 않았다. <비열한 거리>에서 충실한 듯 비열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반대로 무뚝뚝한 듯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변신해 여전히 반항적이고 어두운 듯 하면서도 속정은 깊은 캐릭터로 따뜻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특히나 이 인백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영래를 응원하는 선한 편으로서의 역할만 아니라,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핍박 받고 때문에 위험한 시계 밀수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그늘진 캐릭터로서의 모습도 보여줘서 영래를 받쳐주면서도 역시 나름의 개성도 튼실하게 확보한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영화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꽤 낯설게 다가오는 여러 소재들을 차용함으로써 전형적인 가족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디테일한 면모를 보여준다. 사카린을 넣어 달게 만드는 아이스케키 제작과정, 아슬아슬하게 경찰의 눈치를 살펴가며 해야 하는 화장품 밀수와 시계 밀수 등 6,70년대에만 볼 수 있었을 독특한 현상들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배가시켰다. 뿐만 아니라 시대가 한창 유신시대로 접어들어 한편으로는 어두운 시대인지라 당시의 사회적 문제도 제법 건드리고 있는데, 고아의 증가로 인한 입양 문제와 "빨갱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반공 문제이다. 아이들끼리도 "입양"이라는 단어가 서슴없이 오갈 만큼 고아들의 입양 사례가 늘어가고, 이런 상황은 영래 친구 송수에게도 너무나 아꼈던 동생 훈이의 입양으로 보다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고아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송수는 부산으로 가 신발공장에서 일할 꿈을 꾸는 등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벌써 생활전선에 뛰어들며 돈을 버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사실 영래를 비롯한 아이들이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는 것부터가 이른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이긴 하지만) 또한 안그래도 반공 사상이 확산되면서 북한에 대한 배척이 심해지는 가운데 빨갱이의 아들이라고 먹이고 재워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하는 인백의 모습은 이념적 갈등으로 죄없는 그 자손들까지도 희생당해야 하는 시대의 어두운 면모를 조용히 들추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유독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내가 앞에서도 말했듯, 이 영화가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가졌던 "모르는 것에 대한 동경"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딜 가나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아이스크림이지만, 이 당시 "아이스케키"는 정말 아이들의 최고 로망이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이스케키 하나 먹는 걸 소원으로 여겼고, 먹을 수 없어도 때론 눈 앞에 있는 것만 봐도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맛을 상상하며 음미하기도 했다. 베어 먹는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한번 "뽈아 먹기"만 해봐도 소원이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영래에게는 이러한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동경이 "아버지"라는 존재로 또 한번 옮겨진다.
물론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이유없는 그리움이나 동경은 가족에 대한 갈망,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길 원하는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한정지을 수도 없겠지만, 난 굳이 영래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이런 "가족애"적인 면으로만 한정짓지 않겠다. 영래에게 아버지는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 그리운 존재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먹여주고 좋은 옷 입혀줄 것 같아 그리운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못해주더라도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뭐 부모의 사랑이니 효도니 하는 거창한 주제를 붙이지 않고도, 그저 없을 것 같았는데 있다기에 보고 싶은 존재 말이다. 특히나 영래 나이에 자신에겐 없는 것, 하지만 어딘가 분명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은 유독 커지게 마련일 것이다.
영래에겐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러한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대변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라 아직 모르는 게 많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너무 많기에, 자신에게 보다 많은 세상의 좋은 부분, 삶의 멋진 면들을 가르쳐줄 그런 미지의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잃어버린 가족의 일부분이었던 아버지를 찾는다는 건 그 나름의 무게감도 갖고 있겠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짜릿하고 달콤한 맛을 선사해줄 아이스케키에 대한 아이다운 호기심과 갈망도, 귀신 나온다는 어두운 동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동경도 역시나 이런 아이들의 "모르는 것,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별반 다를 건 없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배경이 아폴로 11호가 처음 달에 착륙했던 시기였고, 그 순간을 동네 사람들이 모여 TV로 지켜보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떤 거창한 목적 없이 그저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디는 그 순간의 짜릿함과 놀라움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미지의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낯설지만 놀라운 즐거움이 갈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도 있듯, 때론 모르는 게 많을 수록 삶의 재미가 더 알차게 변할 때가 있다. 남들은 재밌다고 난리가 난 영화나 드라마를 아직 보지 못했을 때, 남들은 맛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먹거리를 아직 먹어보지 못했을 때처럼 말이다. 적어도 난 남들이 이미 느꼈을 그 처음의 경이로움, 뿌듯함, 놀라움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즐길 거리가 더 많이 남아 있는 셈일테니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이렇게 뭘 몰라서, 아직 나한테 그런 게 없어서 왠지 더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일상의 경험들이 참 많았었다. 바로 맞닥뜨리게 되면 느끼게 될 짜릿한 즐거움때문에 내심 기대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었고.
지금은 이런 재미가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물론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하는지라 하루가 지나면 또 새로운 게 생겨나곤 하지만, 통신의 발달, 교통의 발달 등 많은 것들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게 생겨나면 궁금해 할 겨를도 없이 속속들이 접하게 되는 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 <아이스케키>는 지금보다는 새로운 것을 접하기 전까지 많은 뜸을 들여야 했던 60년대 속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겪어보지 못한 게 많아서 그런 미지의 경험들 앞에서 눈알 굴리며 심장을 부여잡고 가슴 설레했던 우리 어린 시절의 모습에 따뜻한 애정의 시선을 보내는 영화다. 오랜 호기심 끝에 겪는 경험들이라 유독 그 맛이 달콤했고, 유독 그 감촉이 따뜻했던 그런 시절 말이다. 지금도 이런 일상의 설렘이 많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아, 모르는 게 참 많았던 저 때로 한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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