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앙뚜완 베랑"이다. 난 6개월째 입원중이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쁘띠 마르땅>의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한 노인이 읊조리는 말이다. 마치 영화 <메멘토>의 레너드가 했던 대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이 노인은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온몸이 마비되어 말조차 할 수 없는 이 노인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박이는 것과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는 것이다. 그것은 텅빈 병상에서 외로운 투병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베랑만의 유일한 유희이며 생활의 전부이다.
<쁘띠 마르땅>의 포스터에서 익히 본 심상치 않은 꼬마의 표정과 언잖은 듯 꼬마를 응시하는 베랑의 얼굴에서 우린 이 두 사람의 관계와 상황설정이 궁금했을 것이다.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드와 토토의 우정을 연상시키고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에릭과 덱스터의 죽음 앞에서의 순수한 우정을 생각하게 끔하며 <제 8요일>의 조지와 아리의 외로운 인생행로에서의 동반자적 입장의 우정을 떠오르게 하는 잔잔하고 유쾌한 프랑스 영화 <쁘띠마르땅>
노인(베랑)과 꼬마(마틴)의 우정이 범상치 않다.
너무나 고요하고 조용한 베랑의 세계에 겁 없이 뛰어든 한 꼬마 마틴이 있다. 소아암으로 입원중인 병원에서 붉은 조끼에 커다란 베낭을 메고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다니며 병원을 누비는 영악하지만 사랑스러운 마틴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하여도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일까? 영악한 병원생황에 종지부를 찍고 베랑의 세계와 마틴의 세계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과 솜털이 뽀송뽀송한 꼬마가 친구가 된다는 건 어딘지 의아한 면이 있다. 조부와 손자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관계가 아닌 투병생활에서의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인간 대 인간의 우정을 우린 <쁘띠 마르땅>에서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난 허리우드식 ending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ending이 주는 아쉬움 말이다.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베랑과 마틴의 뒷모습...그리고 자막이 올라간다.
"이쯤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죽음이 주는 여운과 친구가 있음으로 외롭지 않은 사후세계를 맞이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은 <쁘띠 마르땅>
같은 프랑스 영화이며 낯설었지만 외로웠던 두 남자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를 다룬 <제 8요일>에서 주는 죽음의 여운은 슬프기 보단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조지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쁘띠 마르땅>에서의 ending을 아쉬워하는 나의 모습은 아마도 베랑과 마틴의 우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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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35
1
쁘띠 마르땅(2000, Le Monde de Marty)
제작사 : France 2 Cinema, CRRAV [fr], Caro-Line Production, Caroline Productions, Outsider Productions / 배급사 : (주)미로비젼 공식홈페이지 : http://www.martin-movi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