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런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여교수의 은밀한 유혹'이란 제목 때문에
엄청 야하고 소위 그런 그런 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간 사람들이
실제로는 여교수를 비롯한 지식인층을 비꼬는 영화인 줄 알고
실망하고 나왔다는 이야기
음...
날라리 과거를 청산하고 '교수'로 새롭게 태어나
뭇남자들과의 연애와 자아도취에 빠져사는 한 여자를 비웃으며
우리 모두를 비웃는
블랙코미디 '여교수의 은밀한 유혹'
사람의 인생에는 '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를 만나서 사람들은 변화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날라리였던 조은숙이, 혹은 박석규는 자신들의 장난으로 죽은 친구를 통해 '변화'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그 과거의 자신은 자신이 아닌 척 모른 척 살아온다.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어머니를 걸면서까지 잡아떼는 박석규나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조은숙이나. 과거도 계기도, 자기 자신도 모두 잊고 부정하면서.
그들은 그 부정으로 인해 또 두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또다른 부정하고픈 과거를 만드는...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부정하고 싶은 과거는, 그들의 본모습은
그걸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을까?
아니 숨기면 삶이 편안해질까?
진실을 숨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진짜 자신의 모습일까?
사실..
이 영화가 어떤 면을 꼬집고 싶었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한 조은숙의 이중적인 면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에 의한 주변인의 죽음을 겪고 변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변화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침울해져 있던 조은숙이
술에 취해 시를 짓고는 자신의 시에 도취되는 모습은
죽음이라는 계기를 겪고서 변화하는 듯해 보이지만
본질은 그대로... 또다시 자신의 겉모습으로 그러한 위안속으로 도피하여 안주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문소리는 이번 영화에서도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았을 연기
그런 노출을 감행하면서까지
그녀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 왜 조은숙은 다리를 절까? 궁금해서 네이버에 물어봤더니 이런 답변이 있었다..
......
문소리가 연기한 삼천대학 염색과 교수인 조은숙은 '교수' 라는 사회적 명예를 갖고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남자들의 은밀한 시선을 즐기는 솔직한 여자. 현재만 그런 게 아니다. 조은숙은 이미 중학생 때 남자친구와 과감한 섹스를 즐기고, 남자친구의 동생에게 섹스를 제안할 만큼 '날나리'였다.
그런 조은숙은 다리를 전다. 술에 취하면 절룩거리는 한쪽 다리는 아예 풀려 걷기조차 힘들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끈한 몸매로 행하는 파격적인 섹스 신과 제대로 걸음조차 걷지 못하는 장면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섹시한 조은숙이 다리를 저는 이유는 뭘까.
이하 감독은 "남자들은 완벽한 여자보다는 뭔가 한가지는 부족한 여자에게 더 끌리는 것 같다. 말을 못하는 참한 여자라든지. 그래서 조은숙이 다리를 저는 것으로 설정했다. 신체 조건이 완벽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당당하게 육체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이라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는 다리를 저는 이유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그냥 주변 사람들도 그 자체로 받아 들인다. 이 감독의 이 같은 설명 외에 문소리와 감독, 제작진은 이런 설정을 했다.
중학 시절부터 섹스를 즐길 정도의 '날라리'가 어떻게 교수가 됐을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큰 계기가 있었거나 날라리 생활을 잠시나마 청산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남자 문제를 '세게' 겪었을 터. 그 와중에 중학 시절에는 절지 않았던 다리를 절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정으로 문소리는 한쪽 다리에 장애를 얹었다.
......
덧붙임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저는 다리는 그녀의 본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닐까? 매끈한 몸매나 진한 화장이나 교수라는 직책이 그녀를 잘 포장하지만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는 다리는 숨길 수 없는 그녀의 본성이 아닐까 하고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이 영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