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보통여자. 액션 활극을 만나다.
느와르, 다찌마와리 액션 이라는 마초적 냄새 강한 장르성 영화들이 대한민국 보통 여성들에게 관심받기에는 힘든 장르 아닌가 싶다. 필자 역시 보통의 그네들로서 이소룡과 성룡에 열광하기 보다는 장국영과 곽부성에 열렬한 지지를 표했던 자였음을 밝힌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영화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단순히 화면에 펼쳐지는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 홍콩영화를 무수히 즐겨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점의 홍콩영화(중국영화라고 대부분 표기)는 무협을 기본으로 다양한 ‘액션’이 중심인 수많은 영화들이 선반을 수놓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극 강한 스토리성으로 진한 감수성을 느끼기 보다는 자칫 율동, 무희에 가까운 그들의 몸짓을 좋아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정말 수없이 봤던 영화들을 지금은 대부분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배우만 기억할 뿐.
그랬던 필자 앞에 ‘액션 활극’ 이라고 당당하게 장르를 표명한 작품이 다가왔다. 그것도 ‘류승완’ 이라는 액션을 사랑한 가장 장르적 감독이 대표 무술감독 ‘정두홍’이라는 이름과 함께 말이다.
‘활극’ 이라 함은 난투 장면이 많은 영화나 연극을 말한다. 난투란 말 그대로 서로 뒤섞여 어지럽게 싸우는 것을 일컫는 말로서, ‘격렬한 싸움’을 비유하여 이루는 말로 표현된다. 그야말로 영화계 용어. 다찌마와리 인 셈이다. 와이어와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을 배제하고 날 것 그대로의 몸의 향연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감독의 제대로 된 배짱과 함께 말이다.
- 그 감독. 류승완. 정두홍. 액션의 짝패.
단어란 참 기묘한 것이 절대 한 가지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중의 의미를 포함할 때 그 매력에 푹 빠져들곤 한다. 그 중의적인 감각은 바로 언어의 쾌감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제목 <짝패>가 주는 사전적 의미는 한 짝을 이룬 패, 단짝 을 의미한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짝패’란 단어 속에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짚어보았다.
류승완 감독의 한 인터뷰 변에서 이 영화를 구성하게 된 배경을 듣게 되었다.
본질적인 액션영화의 흥분을 느끼고 싶었다는 그는 어릴 적 극장에서 보았던 액션영화를 향한 두근거림과 갈증이 있었는데.. 그 세계의 방점을 찍지 않고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면 후회가 될 것 같아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으면서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류승완 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취지하에 이 영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학문적으로 글을 통해 영화를 학습한 사람이 아니라 시네필로서 무수한 영화보기, 영화 자체를 통해 감독의 자리에 오르게 된 액션키드이다. 이 작품 속에서 류승완 감독은 1인4역이라는 커다란 짐을 안고 간다. 감독, 주연배우, 각본, 제작까지. 액션자체의 매혹을 위해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며 공들인 선배들(성룡,버스터키튼,찰리채플린)을 닮고 싶다고 항상 말해왔다는 그는 감독에서 배우로 라는 특이한 전이를 선택한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액션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감독으로, 필자처럼 열혈 팬도 거느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그 옆에 ‘액션’으로 말할 수 있는 ‘짝패’(첫 번째)는 과연 누구일까? 아마 주저앉고 대답할 수 있는 건 정두홍 이라는 이름일 것이다.
40여편의 넘는 영화에 ‘무술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정두홍은 대한민국 현재 가장 믿음직한 <액션>의 수장이 아닐까 싶다. 해외의 DVD Shop에 한국액션 코너를 장식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그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로 우리의 액션이 뻗어갈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 둘이 밑그림뿐만 아닌 연기를 통해서 액션의 짝을 이룬다. 대단히 흥미진진한 프로젝트인 셈이다.
- 그 영화의 스토리.
서울에서 형사생활을 하던 태수(정두홍)가 어릴 적 친구 왕재(안길강)의 부음소식을 듣고 십여 년 만에 고향인 충청도 한 가상의 도시 ‘온성’ 으로 향한다. 이 가상의 도시 자체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배경을 차지한다. (영화의 영문제목은 City of Violence:폭력, 난폭 이다)
장례식장에서 어린 시절 5인방이었던 필호(이범수), 동환(정석용), 석환(류승완)을 만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 태수는 왕재의 죽음에 의혹을 품고 서울행을 미룬 채 주변을 중심으로 조사하게 된다. 석환 역시 이제까지 자기 집안을 꾸준히 챙겨주던 왕재의 죽음으로 극도로 분노한 상태. 그만의 방법으로 숨은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태수는 알 수 없는 패거리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석환의 도움으로 모면하지만 사건에 다가갈수록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사건의 중심에 필호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충격에 휩싸이지만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살갑던 고향은 이미 썩을 데로 썩어가고 이곳에서 더럽게 권력을 쥔 필호는 음모를 캐내려는 태수와 석환에게 위협을 가한다. 어느새 짝패(두 번째)를 이룬 태수와 석환의 판은 과연...
짧지만 5인방의 캐릭터에게 각자의 성격을 부여시키고 그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감독은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한다. 나미의 ‘영원한 친구’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87년을 10대의 감성으로 누린 그들의 에피소드들이 상당의 유쾌하게 다가온다. (노래방에서만 알고 있던 필자에게 처음 들려진 나미의 원곡은 희열을 선사했다.) 복장 하나하나에도 캐릭터성을 부여해준 감독이 참 센스 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영원한 친구’를 소망하지만 현재의 그들에겐 많은 것이 파괴된 후다. 20년 후를 기약하던 소망의 뱀조차 뜯어 먹어버린다.
잠짓 느와르적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은 복수는 나의 것. 분노의 주먹이라고 외치며 거칠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여유’를 갖는다.
그 여유는 ‘충청도 사투리’ 란 카드를 선택함으로서 조폭의 그림자에서도 날카로운 쎈 맛에서도 살짝 비켜갈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그것은 특유의 ‘유머’를 살리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석환의 비데부분과 사우나의 살수캐릭터에 필자 쓰러지다) 버디영화가 갖는 수다스러움에서 탈피하며 충청도 사투리에 이정도의 시니컬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석환의 캐릭터로 인해 놀랍게 확인되는 바이다.
- 그 남자. 이 범수.
실로 놀랍고도 반가운 카드는 바로 이범수였다.
악역이 어둡고 악하고 더 잔인해질수록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거리를 많이 던져주게 되는 것이 바로 선과 악의 대립이 강한 액션영화. 악역이 제대로 살아있어야만 이야기의 축이 흐트러지지 않게 된다. 그가 조, 단역 시절에 눈에 띄었던 건 악당의 캐릭터였음을 기억한다. 필자에게 이범수란 배우를 알게 했던 건 <태양은 없다> 에서였다. 그의 초기 모습을 스크린에서 다시 확인하는 기쁨과 더 높이 성장해버린 그를 지켜보는 건 여간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필호는 억눌린 열등감이 존재했었고, 그 열등감을 자신의 능력치를 벗어나는 권력으로 채우려했음이다.
비록 그 권력이 강한 힘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하는 권력일 지라도 필호는
“강한 넘이 오래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가는 넘이 강한 거드라” 라는 표현으로 인생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필호란 캐릭터는 악의 절대강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알고 비굴했고, 비열했으며 비겁했다. 온성이란 도시의 타락은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욕심에 기초한다. 필호는 그 것을 이용하면서 자기합리화의 구점을 만들기도 한다. 분노하지 않으면서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그것은 충청도사투리라는 선택이 절묘했음을 또 한 번 증명한다.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실로 필자의 입에서 쉴 새 없이 강아지! 강아지! 를 외치게 만들었다. (유한 표현이오니 읽으실 땐 본래의 표현으로 읽으시길 바란다.) 도박에서 ‘짝패’는 서로 엇갈린 두 패를 말한다. 필호와의 관계를 중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 그들이 보여준 액션! 액션! 액션!
액션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스토리의 치밀함도, 배우의 완벽한 연기력도 아니다. 바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비쥬얼이 아닐까. 모든 면에 너그러움을 발휘하게 되는 장르가 바로 액션! 인 것이다. 이 장르 속에서 배우는 실로 신체의 유희를 보여준다. 그들은 몸으로 대사하고, 몸으로 표현한다. 그 몸의 놀림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고, 그 독특한 비쥬얼인 액션에 관객은 반하게 되는 것이다.
<짝패>에서는 첫째, 성룡 영화의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던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여 도망치듯 결투를 벌이는 것을 류승완식으로 해석해 놓은 거리에서의 액션장면들은 규모를 넓히면서 비보이들의 춤을 매개로 하여 보여주는 창의적인 액션과 야구부, 하키부 등의 운동부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도구로 펼쳐 보인 신에 있어서 ‘독특함‘을 내세운다.
둘째, 경찰서 습격신은 서울액션스쿨 무술감독들의 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즐거운 신이었다고 본다.
난잡하게 모여들어 싸운 장면들을 본 이후에 등장하는 절제된 액션은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지 않고도 강한 내공을 보여주는 이 신은 액션의 합이 자로 잰 듯 치밀하며 짧지만 굵은 임펙트를 선사한다.
셋째,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운당정 전투는 원맨쇼 보다는 투맨쇼가 더 나음을 증명하며 화려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다다미방에서의 사투. 좁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칼날소리의 진동은 소름끼치며 고수4인방과의 대결은 생짜액션의 절정을 보여준다. 와이어나 특수효과를 거부한 말 그대로의 생짜액션.
- 최고의 시니컬함을 보여주는 엔딩.
어쨌든 그들은 왕재와 같은 비극을 맞이한다. 칼을 맞고 외마디 비명밖에 지를 수 없는.
어린 시절 우정의 맹세는 폭력의 도시 앞에서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그들은 모두 세상위에서는 별 볼일 없는 짝패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석환의 마지막 말처럼. 씨발. 그 자체.
혼심의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달려왔는데 비정함도 잡다한 감정도 어떠한 여운도 남겨버리지 않고 단방에 마무리 해버리는 최고의 시니컬함을 보여주는 엔딩. 아. 최고다.
빛 날만 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이뤄낸 이 작품은 우직함 속에서 현란함을 배우의 몸으로서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우리 것으로 이런 유희를 맛 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기존의 남성관객에게 사랑받았던 이 장르는 <짝패>로 인해서 여성들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받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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