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와 단절은 공포라는 코드와 밀접하다. 누군가와 동떨어지거나 홀로 남게 되는 상황에서의 심리적 고립감은 어느 공포영화에서건 활용되는 단골 소재임은 확실하다.
특별한 상황에서의 공포스러움보다도 어쩌면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공포감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익숙한 환경이 무시무시함으로 변모한다는 것에 있다.
이 영화는 지하철에서의 고립과 밀폐를 통해서 공포를 유출시킨다. 특히나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지상과의 단절과 밀페가 유용한 곳이다. 이영화는 그런 공간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그 너머에 슬래셔 무비의 잔혹함을 얹어놓는다.
라디오 헤드의 전설적인 명곡 'Creep'을 떠올렸을 지도 모를 이 영화의 제목은 동사의 의미 그 자체를 대변한다.
영화의 긴장감은 시작부터 응집된다. 정체모를 대상에 대한 미궁의 긴장감이 관객에게 강한 주의를 주며 영화는 출발한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한번 화제를 바꾸며 출발선을 가다듬는다.
중반부 정도까지의 심리적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좇기는 자와 좇는 자간의 구도는 존재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추격자에 대한 불안감이 심리를 지배하면서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낸다. 적어도 그 정체가 밝혀지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공포가 인정하고 싶은 긴장의 쾌감으로 연결되는가 혹은 거부하고 싶은 찝찝한 혐오감으로 번지느냐의 문제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혐오스럽다. 전형적인 슬래셔 무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살이 난자되고 피가 튀는 이 영화는 고어(Gore)적인 슬래셔 무비와 가까워보인다. 비쥬얼적인 면에서 톤다운된 음습함이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기본적인 긴장감 조성에 이용된다. 미로처럼 퍼진 지하철 내부와 하수처리장의 구조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공황도 나름대로의 긴장감에 한몫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아쉽다. 심리적인 긴장감보다는 눈으로 확인되는 불쾌감을 거쳐야만하는 두려움이 이 영화가 표방하는 공포의 본질이다. 세련되지 못한 B급정서의 공포는 매니악한 듯 하지만 저예산이라는 핑계는 맥없는 스토리의 구멍앞에 다소 미약해보인다.
특히나 적의 존재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 조여들던 긴장감의 나사는 맥없이 풀려버린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추격전은 긴장감보다는 허탈한 비소로 보답된다.
긴장감의 지속은 공포라는 코드안에서만큼은 확실히 다져야 하는 기초체력이다. 이 영화는 그런 기초적인 체력을 축적하지 않은채 기교에 집착했고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기교는 그 한계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심리적인 압박의 흐름이 끊긴 뒤에 남는 것은 시종일관 지겹게 되풀이되는 의미없는 술래잡기 뿐이다. 그리고 그 술래잡기 끝에 남는 것은 허무한 생존과 허탈한 엔딩 크레딧 뿐.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은 힘겹게 참아내야 했던 혐오스러운 장면들의 나열된 기억들.
-written by kharis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