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필자는 '짝패'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냥 타짜영화를 상상했다. 짝이 되는 패.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단어는 물질적 명사로써의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은어로써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남자와 남자사이를 맺어주는 것은 의리라는 단어다. 듬직하면서도 결연함이 엿보이는 이 단어만큼 남자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도 없다. 이 영화는 이 단어 자체에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내달린다. 그리고 날것의 본능적 액션이 그 질주를 부채질한다.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보여줬던 극단적인 비정함이 주를 이룬다. -물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예외성도 있지만 이 작품이 기획적인 목적성을 띈다는 점에서 주목한다면 논외로 치는 것이 마땅하다.-특히나 팔딱이는 생선처럼 죽어가면서도 잔존하는 생명력으로 몸부림치는 듯한 처절한 비정성이 영화마다 지니는 감정의 강단차이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주입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정두홍이라는 줄충한 액션스쿨의 수장이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사실과 감독을 맡은 류승완이 직접 연기까지 선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 영화의 미편집본을 예전에 미리 보았기에 완성본에 대한 기대감 여하정도는 사전에 조율이 된 상태였다. 후반작업이 들어가지도 않은 미편집본임에도 액션 그 자체의 펄떡이는 느낌 그 자체는 경탄스러웠다. 그리고 편집본은 그러한 지난 경탄을 한층더 끌어올릴만한 그것이었다.
시작부터 영화는 심상치 않다. 어디론가 달아나는 세사람. 그리고 그 뒤를 좇는 한사람. 그리고 카메라가 미처 좇지 못한 골목너머 그림자의 다툼이 보여지고 이윽고 현장에 도달한 카메라는 피흘린채 쓰러진 추격자를 목격한다. 그리고 그의 앞을 가리는 검은 기척. 알 순 없지만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며 영화는 출발한다.
서울에서 강력반 형사생활을 하는 태수(정두홍 역)는 갑작스런 친구 왕재(안길강 역)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고향 온성에 내려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마고우였던 필호(이범수 역)와 동환(정석용 역), 그리고 동환의 동생이자 친구같은 동생 석환(류승완 역)과 회포를 푼다. 그리고 왕재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각자 실마리를 캐는 태수와 석환은 알 수 없는 무리배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이 영화의 중심은 뭐라해도 스토리보다는 비쥬얼이다. 그리고 그 비쥬얼을 만드는 액션은 야생적인 거칠음 그 자체에 있다. 익히지 않은 고기의 육즙은 신선하거나 혹은 불쾌하거나이다. 이 영화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의 경계선은 이영화의 액션에 몰입되느냐 혹은 거부하느냐에 달려있다.
솔직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액션은 지금까지 액션을 표방하는 국내산 영화중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물론 CG효과와 와이어를 이용해서 가공(可恐)할만한 몸놀림을 만들어내는 요즘 현실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공(架空)된 움직임에 불과하다. 비현실성을 받아들여야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비가공(非架空)된 액션을 통해 가공(可恐)할만한 파괴력을 선보인다.
성룡과 이연걸 등의 줄충한 고수들이 출연하는 무협영화를 즐기는 이들은 그들의 과장되지 않은 몸놀림에 경탄한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수준이 되는 실전고수가 등장해서 펼치는 액션은 가히 경탄할만하다. 그러나 단지 고수의 무술실력만이 그러한 경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몸놀림을 잡아내는 카메라 워크의 힘이 무술의 내공을 보좌한다. 때론 역동적으로 때론 정적으로 인물들의 동작을 섬세하거나 혹은 거칠게 잡아내는 영상의 힘이 어쩌면 배우들의 치열한 몸날림보다도 일등공신이 될 법하다. 또한 중간중간 등장하는 고의적인 화면의 배분 역시 눈여겨보여지는 면인데 각자 다른 공간의 시퀀스를 분할된 컷으로 동시에 진행한다거나 만화책처럼 몇개의 컷을 쪼갠 후 동시적으로 펼쳐보인다거나 하는 등의 영상적 파격미도 상당히 세련된 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마치 '킬빌'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도 몇군데 있는데 특히 사시미칼로 무장한 패거리들과 다다미방에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우마서먼이 펼쳤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물론 표절적인 동질감이 아닌 오마쥬에 가까운 듯한 호의감이 느껴진다.
사실 비쥬얼이 중심포석에 놓여있다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위에 번지르르한 볼거리를 차려놓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비열함과 비정함의 확장된 연속이다. 느와르적인 처절함으로 깊어지는 이야기만큼이나 치열해지는 활극의 강도는 두개의 개별적 곡선을 그리지만 종래적인 하나의 방점으로 융합된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끝난다는 데스매치처럼 아귀다툼으로 내달리는 영화는 깊어가는 클라이막스를 후반으로 몰아가며 종래에 모든것을 폭발시키는 유종의 미덕까지 발휘한다.
극중인물들이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로부터 풍기는 구수한 정겨움은 영화의 비정성과 상극의 위치에 서 있는 듯 하다. 특히나 필호의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함 앞에서도 웃음이 유발되는 것은 그의 능청스러운 역설적 대사를 수놓는 사투리다. 또한 영화는 치열하게 내달리는 순간에 조차도 위트를 놓지 않는다. 경박함이 아닌 순수함으로 대입된 이 영화의 촌스러움은 비장한 느와르적 감성을 적당히 완화시켜준다. 또한 시골스러운 우직함은 영화에서 중시하는 의리라는 목적성 자체를 환기시키며 관객의 강렬한 감정적 동조를 자극한다.
또한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캐릭터 역시 굵직한 인상을 남기는데 정두홍의 화려함과 류승완의 예상밖의 실력에서의 놀라움으로 빚어지는 액션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영화의 감정선에 힘을 불어넣는 이범수의 비열한 악역연기는 그들의 처절한 내달림에 타당한 동기를 불어넣으며 영화의 비정성에 힘을 싣는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치열한 몸부림은 고삐를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치열했던 내달림의 목적지에서 나직히 내뱉는 석환의 한마디는 단연 압권이다.-필자는 그 한마디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을 단순무식하게 압축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결국 제로섬게임으로 귀결되는 아슬아슬한 사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목적지에 도달한 뒤의 허무함을 남기며 어떤 여운도 남기지 않은 채 달아나버린다. 이 영화의 결말은 쿨함 그자체다. 어떤 변명도 부연도 필요없이 명료해진 그 상황에 대한 잔상만이 존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없다는 영화의 목적은 결말로써 명확해진다. 액션 그 자체에 대한 헌사. 스토리조차도 치열한 액션을 보좌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물론 단순히 명목상의 구실이 아닌 적극적 활용으로써의 수단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이영화가 액션이외의 다른것들을 간과하지 않았다. 다만 극대화된 액션에 이용되었을 뿐이다. 호쾌한 몸동작으로 수놓는 극단적 비정함. 꿈틀대듯 생명력이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액션으로부터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바로 이영화가 찍고 있는 명쾌한 방점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폭력의 도시로 돌아온 류승완표 액션은 좀 더 치열해지고 화려해졌디만 여전히 우직하게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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