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장, 스크린에서 만난 지수(엄정화)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녀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이삿짐을 나르는 일꾼들에게 요구만을 할 줄 알며
이웃에게 보이는 싹싹함도 없으며, 대책없이 행동만 앞서기도 하는 우리네 일상과 닮아있다.
'아 피아노를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호(박용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범상치 않은 미모를
가지고는 있으나, 까짓 외모쯤이야 성격을 좀더 드러내기 위한 설정일 뿐 따지고 보면 우리네 누이 혹은 딸과
다를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영화가 시작되고 잠시나마 일본의 만화인 '피아노의 숲' 생각이 나 눈쌀을 찌푸렸으며
시종일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경민(신의재)은 답답함과 동시에 지수의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함(?)은
짜증을 몰고 간다.
아마도 초반에 광호의 너털웃음(사실 어색하다.)과 공포의 바닷가(영화를 보시라.)가
없었다면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영화를 이끄는 것은 대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수의 연주와 경민의 발전해나가는 연주들.
그것은 대사 없이도 영화가 매끄러이 진행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고 가녀린 그렇지만 때국물이 묻어나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 속에 우리는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접한다.
지수는 선생이지만 선생이 아닌 존재다. 경민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낀다.
이루 말로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경민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그 진실을 우리에게도 전달한다.
사랑? 그까짓거 별거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주는 점심과 반복되는 연습, 그게 사랑이다.
음악에 심취하여 언제부턴가 사라진 광호의 개그도 눈치채지 못할 무렵 영화는 이미 결론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곧 다시 그를 만난다.
부쩍 커버린 그래서 멋드러진 연주를 하는...
우리를 박수를 쳐야할 것만 같은 황홀감에 빠지게 만드는 그를...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결론도 뻔하다.
그러나 대사 몇마디 듣지 않아도, 어색한 개그가 있어도, 특별히 엄정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재미있다. 가치있다. 볼만 하다.
흐르는 피아노 선율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울 수 있다.
굳이 예쁜남자가 나오지 않아도 스펙터클 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감동하며 울 수 있다.
그것이면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