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감독 : 안판석
주연 : 차승원, 조이진, 심혜진, 유해진, 이아현, 송재호
보는 내내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좋은 나라야' 라고 울먹이며 외치는 선호의 모습과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사랑해'라고 나지막히 읇조릴 때
그저 바라만 보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연화의 모습이 그 안타까움에 계속 얽매이게 했다.
'오직 당신만 없는 그 곳'에서 벌어지는 영화는 마치 음악회를 보는 듯 했다. 몇개 되지 않는 시퀀스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변주해 나가면서 훌륭한 기악곡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정공법으로 참 '착하게도' 모든 것을 돌파한 연출력도 오히려 신선했다. tv 드라마 연출가가 영화를 찍겠다는, 이제는 관심조차 쓰이지 않는 그 흔한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버린 것이다.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 프로덕션 디자인. 과연 정말로 남쪽에서 촬영한 것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들 정도로 북한의 평양 시가지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었다. 심지어 그 곳에서 200미터 멀리 떨어져 걸어다니는 '평범한 조선인'조차 그래 보였단 말이다. 지하철역, 박물관, 학교, 시가지, 공연장, 놀이동산 모든 것들이 '북한 그대로'의 것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힘도 빌렸겠지만 아날로그의 파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을 빼놓으면 또 섭섭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차승원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순수한 북한 청년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잘 표현해 내었고, 심혜진은 안보이는 구석에서 그저 몸을 낮추고 조용히 연기했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진짜 보석은 조이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 벌써 영화 주연을 맡게 될 만큼 실력있는 배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사 하나하나에서부터 몸짓과 차승원에게 결코 눌리지 않는 조합으로 훌륭한 내면연기를 잘 소화했다.
한편으로 차승원이 정말 좋은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은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절제에 절제를 가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당연하게도 모든 것을 평소보다 한 발짝 내려서는 연기를 펼쳤다. 그래서인지 조이진과의 밸런스도 유지가 됐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연화가 선호에게 '이제 놓아주지 않을거예요. 각오 단단히 하셔야 될겁니다' 라고 울면서 그 동안에 서러움을 처음으로 말로 표현하는 장면이자 이별의 순간이었는데, 이 때 차승원은 고개를 떨구고 있어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국경의 남쪽>이 '북한'을 소재로 하는 여타 영화와 전혀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점도 강점이다. 남으로 내려온 북한청년의 순애보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아무튼 상투적이지 않은 엔딩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던 - 답답하고 아프고 상처입어도, 살아가는 가운데 그것은 모두가 그저 '지나온 일'에 불과하다는 것 -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완성도 높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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