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의 세계 역사는 참으로 끔찍했다. 마치 약육강식의 극단적인 야수적 본능이 꿈틀대는 것만 같던 그 시대는 강한자가 약한자를 끔임없이 집어삼키고 쥐어짜던 시절이었다. 강한자에게는 축복같은 시절이었고 약한자에게는 저주같던 시절이었다. 서구 열강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유린했고 유린당하는 약자의 대륙은 군말없이 서러움을 삼키며 숨을 죽인채 조롱당하고 끌려다녀야만 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암울하다. 물론 나름대로 발전된 국가도 있지만 여전히 미지의 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원시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기아에 허덕이고 내란에 휩싸여 숨을 헐떡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먹고 먹히는 강자와 약자의 소비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 물론 노골적으로 쥐고 짤 수는 없는 글로벌 시대적 세계관 뒤에 드리워진 음지적인 종속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벼룩의 간을 떼어먹는 부유한 자의 횡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이 영화는 '존 르 까레'의 동명원작 소설을 모태로 하여 만들어졌고 원작과 마찬가지로 제3세계, 즉 아프리카 대륙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제약회사의 행태를 고발한다.
질병에 신음하는 케냐에 약품을 제공하는 제약회사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늑대의 탐욕스러운 웃음을 감추고 있다. 헌신하듯 제공되는 약은 실질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신약이며 약을 제공받는 아프리카의 검은 병자들은 비공식적인 실험자료 통계로써 실현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열한 사업은 단지 기업적인 이익 창출에서 마감되는 사적인 비리가 아닌 은밀한 국책사업으로 연결되는 음성적인 블록버스터급 커넥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는 이 영화는 정치적인 격렬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 어조나 화법은 다부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메세지적인 진지함과 함께 감성적인 로맨스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음모론적인 대면은 '시리아나'의 충격에 버금가나 질감적인 느낌은 전자의 무미건조함을 동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설적인 친절함을 지녔음에도 영화는 날을 세우지 않고 관객에게 안정감있는 무난함을 제공한다. 이는 두 남녀 주연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흡수한 남녀주인공이 보여주는 탄탄한 감정적 결속력에서 흐르는 감성적인 유연성으로부터 기인한다. 두 남녀의 사랑이 과장스럽지도 미약하지도 않은 진실됨 그 자체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영화의 로맨스는 단순히 로맨스로써의 한 축을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자체의 날카로운 각을 무디게 다듬어주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 어쩌면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진지함을 관객에게 쉽게 용해될 수 있는 촉매역할을 하는 것. 또한 사랑에서 기반한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된 의심의 파문이 전체적인 음모에 대한 격렬한 지적 욕망으로 확산되는 과정에도 그럴듯한 타당성을 제공한다.
긴장감과 더불어 애잔함이 공존하는 이 영화의 감정적 축은 진지한 현실적 음모론과 진실된 감상적 로맨스의 두 선로를 지니지만 두 선로는 각자 분리되어 진행되지 않고 하나의 선로위에 교차하여 동일한 방향성을 획득한다. 테사(레이첼 와이즈 역)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과거의 회상 사이를 구간적으로 이동하고 플래쉬백하면서 현실에 대한 근거를 과거로부터 조목조목 들이민다. 그리고 테사의 행동하는 지적 열정이 끊으려 했던 악순환의 고리를 저스틴(랄프 와인즈 역)이 이어받게 된 것은 정의감이 아닌 그녀에 대한 애정 떄문이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동떨어진 여집합이 아닌 교집합적인 연계성을 지니는 이유이자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적 탁월함을 자랑할 수 있는 근원적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테사의 죽음 후 그녀의 흔적을 좇으며 진실을 파헤치고 사랑의 잔상앞에 애절해지는 저스틴의 모습은 숙연하면서도 아릿한 슬픔을 자극한다. 제목 그대로 '콘스탄트 가드너'였던 그가 온화와 안정을 버리고 용기와 헌신에 눈뜬 격정적인 투사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그의 온화함과 안정감의 기반이 된 그녀,-그가 스스로 나의 집(my home)이라고 했던 정신적인 안식처로써의 그녀- 테사의 의문스러운 죽음이었다는 바로 그것이 영화의 거창한 영웅적 기질에 대한 예감으로부터 빚어지는 불미스러움을 종식시킨다. 범세계적이며 범국가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감성은 지극히 개인안에 머문채 과장되지 않은 소박한 진실함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이는 진솔한 감동적 여운으로 담겨진다. 특히 결말에서 보여지는 담담한 비극은 이 영화의 감정선이 지닌 애틋함을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현명함이다.
또한 이 영화는 케냐의 자연풍광과 현지 주민들의 삶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며 그곳의 비극성을 과장되지 않은 생생함으로 묘사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철없이 빛나지만 그런 밝음조차도 비극적인 현실을 대조적으로 반영하는 보색효과로 느껴진다. 다소 감상적으로 흐를 수도 있고 쉽게 간과될 수도 있는 먼 이국의 비극에 대한 타성적 공감을 밀어내고 관객 스스로가 혼란을 인지하고 그 심각성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유도하고 보조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동의 기반은 레이첼 와이즈와 랄프 파인즈의 뛰어난 연기로부터 얻어진다. 두 남녀배우가 보여주는 사랑은 사적인 연애담에 머물지 않으며 영화가 보여주는 비범한 메세지를 가릴 정도로 영롱할 정도로 진실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사랑은 진실에 대한 지적인 고발을 떠안게 되는 관객의 차가워진 마음에 대한 따스한 위안이 되고 보답이 되어준다.
여전히 아프리카는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가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감긴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없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먼 이웃의 비참한 오늘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오히려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강대국의 비열함은 더더욱 애통함을 더한다. 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진실에 대한 손짓이며 외면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타인의 가볍지 않은 사연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우리가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지녀야 함은 우리가 인간으로써 스스로 지켜가야할 존엄성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지 못했음은 상당한 불운이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카데미는 이 영화의 놀라운 진실에 부담감을 느꼈던 것일까. 주목해야만할 사실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 이영화의 진지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은 분명 아카데미 트로피의 명예보다도 한차원높은 가치가 있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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