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화를 보기전에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79년에 제작됐고 상영됐던 영화라는 것, 그당시 잘려나간 49분이 복원돼서 나온 영화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리덕스판을 만들어놓고 79년판과는 다른 새로운 버젼이라고 했다는데 난 그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영화를 보고나서 코폴라 감독과 대배우 말론브란도를 존경하게 되었다. 조셉콘라드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는데 소설을 읽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화자체만으로도 그 웅장한 스케일과 지적 통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3시간 10여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분명 영화보기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시간이었지만 베트남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져버린 이시점에서 재탄생한 이영화는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전쟁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내면에 숨겨진 악마적 본성과 광기를 깊이있게 통찰해 내는 예술영화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미쳐버려 캄보디아로 들어간 커츠대령(말론 브란도)을 살해하기 위해 죽음의 강을 따라 지옥의 순례길을 떠나는 윌라드대위(마틴 쉰) 여정은 마치 율리시즈가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신들의 장난으로 자신의 고향 이타카를 찾아 바다를 떠도는 여정을 노래한 호머의 오디세이를 생각나게 한다.
연막탄의 포연으로 가득한 전장터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살기 가득한 전투장면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여기가 바로 현실세계가 아니고 지옥이다."라고 묵시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커츠대령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일행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는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에게도 광기는 드러난다. 바그너의 교향곡을 틀어놓고 헬기에서 발포해대는 전투장면은 이영화의 백미로 꼽을 만한 장면이다.
윌라드는 강을 따라가면서 플레이걸들, 프랑스인들, 베트남인들, 그리고 병사들과 만나게 되고 캄보디아 국경에 다다랐을 때 그는 한 병사로 부터 "지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라는 코멘트를 듣는다.
긴여정속에서 커츠대령의 자료를 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그는 커츠대령이 지나간 길을 더듬어 가면서 대령이 겪었을 경험을 하면서 자신도 대령처럼 미쳐가는 것을 발견한다.
어둠속에서 "그 참혹함.., 그 공포.."라고 말하는 대령의 한마디는 어떤 장면 보다 전율을 느끼게 했으며 고통스러운 그의 표정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쟁을 일으켜 살육을 일삼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이 그의 영혼을 지옥의 고통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는 윌라드가 자신을 죽여 자신을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길 바란다.
선한 본성이 사라지고 악마적 광기만 남은 자신을 그의 영혼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커츠대령을 죽임으로서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부터 구제시켜 주지만 이미 지옥에 와버린 윌라드의 영혼은 누가 구제해 줄 것인가..?
자유수호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베트남인과 자국민을 살육한 미국과 동맹국들.. 한나라에 선인 것이 한나라에 악이 될 수도 있는 상대적 논리.. 절대악이 존재하는 참혹한 전쟁의 현실.. 내가 내용도 잘 모르는 베트남전에 대해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런 생각들을 곱씹어 보게 만드는 영화다.
실감나는 영상과 사운드는 지옥같은 전쟁터를 직접 목격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으며 결코 즐거울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암울하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성찰을 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