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을 받게 되었을 때 어리다는 말과 조금은 멀어졌다고 생각했고 군대를 제대하니 이젠 정말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가 온 것만 같았다. 남자로써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여자로써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여자도 어느 남자못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나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자의 능력은 옵션이지만 남자의 능력은 필수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아닐까.
어쨌든 남자라면 사회에서 홀로 버티고 나갈 시기를 준비하게 되고 언젠가 부모님의 슬하에서 벗어나 자신의 울타리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남자의 숙명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한 숙명을 외면하는 세태가 유행인가 보다.
미국에서 사회적인 이슈로 들먹여지는 캥거루족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이먹어서도 자신의 가정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곁에서 호위호식하길 바라는 젊은이들을 가르키는 용어로써 이러한 세태가 문제로 인식될 정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국내에서 때려붙인 제목처럼 달콤한 백수는 솔직히 아니지만-그는 분명 직업이 있다!!!- 부모에게 껌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웬수같은 아들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평범하지 않은 소재에서 뽑아낸 로맨틱코미디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단 이 영화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배우때문에 주목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된 외화시리즈 '섹스 앤 시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사라 제시카 파커와 '사하라'와 '10일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등에서 주목받았던 매튜 매커히니가 출연한다는 것. 둘다 할리웃의 흥행보증수표는 아니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내의 잠재적 인지도는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에 이 영화는 일단 조금은 보고 싶어진다.
어쨌든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전형적인 할리웃의 철없는 깜찍함이 담긴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우리가 로맨틱코미디물을 보는 것은 그 영화로부터 사랑자체의 달콤함을 느끼고 싶어서이며 유머러스한 여유를 얻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 그나마 어중간한 만족감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취하는 지독한 진부함, 다시말해 그 이전의 이야기가 쥐어짜내듯 보여주는 소극적인 기발함을 깡그리 잊게 해줄 어리석은 결말은 아쉽다.
그래도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트립(매튜 매커히니 역)이 즐기는 갖가지 레포츠의 향연은 흥미롭다. 마운틴 바이크, 암벽 등반, 서바이벌 등의 레저생활을 즐기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전달하며 그의 탄탄한 근육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다.
무엇보다도 두 남녀주인공 외에 눈이 가는 배우는 킷 역을 맡은 주이 디샤넬인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분했다. 시니컬하면서도 괴팍하지만 귀여운 캐릭터를 표현한 그녀의 연기는 영화의 웃음을 보충하고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에 동떨어진 부록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어쨌든 로맨틱코미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장르에 충실했고 적당한 신선함은 있지만 식상한 결말앞에 신선함이 유지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배우들의 매력이 살아있는 캐릭터만을 놓고 본다면 이야기의 부실함에서 느껴지는 한탄을 조금 삼킬 수는 있을 것 같다. 연인끼리 적당히 시간때우며 보는 데이트용 영화정도가 적당하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자주인공은 절대 백수가 아니다. 단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 뿐. 국내 배급사는 영화를 보고 제목을 붙이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또하나의 증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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