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자와 사랑에 빠진 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랑과 꿈은 열정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표의식을 지닌다. 꿈을 향한 열정과 사랑을 향한 열정은 맥락적인 차이를 지니지만 기반적인 모티브는 비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의 근원적 회귀라는 것.
꿈을 꾸는 자와 사랑에 빠진 자는 행복이라는 추구권 안에서 동일하다. 꿈과 사랑은 시선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가치안에서 동질감을 지닌다.
자고로 여성 상위 시대이다. 세상은 더이상 여성들에게 앞치마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차별에 신음하는 남자들이 생겨날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활발해지고 남성 전용의 영역은 사라지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남성 중심적 세태가 뿜어내던 카리스마 넘치는 이야기는 실종되어가고 여성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아기자기하게 손질한 영화들이 눈에 띄게 늘어간다. 점점 감성적이고 세심한 영화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는 것.
어쨌든 이젠 남성들의 꿈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지났다. 그리고 과거부터 여성들의 전유물 중 하나였던 순정만화는 이 시대에 어필할 수 있는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나나'는 일본 만화로써 여성을 타켓으로 한 순정만화이다. 하지만 이 순정만화는 고리타분하게 여성성에 기대며 순종적인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만화의 주제는 동일한 이름을 지닌 상반된 성격의 20살 여자들이 키워가는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삶을 거쳐 키워지는 성장이 담겨 있다.
상당히 유명한, 일본에서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원작만화의 영화화는 반가울수도 혹은 걱정스러울수도 있는 소식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과 원작의 가치와 개별되는 영화만의 가치를 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쩄든 이 영화는 심심할 수도 있다. 영화는 장난스러운 위트를 꺼내보이기도 하고 현장감있는 라이브의 열기를 뿜어내기도 하나 전체적으로 큰 감흥을 자제하고 나직한 아련함을 고수한다. 일본영화특유의 서정적인 자태가 이 영화에서도 곱씹어지고 있다는 것.
어쨌든 영화의 제목이자 원작의 제목이기도 하고 등장하는 두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기도 한 '나나'라는 이 영화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나이가 적을 수록 어필될만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원작만화 역시도 마찬가지인만큼 영화의 취향도 그 선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만화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음은 아쉽다. 아련한 느낌은 들지만 그 이상의 감성적 호소로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원작에 미치는 못하는 영화의 한계라고 여겨진다.
어쨌든 이 영화는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제목 자체가 캐릭터의 이름을 내거는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꿈을 향해 전진하는 '오사키 나나(나카시마 미카 역)'는 보이쉬하고 터프한 캐릭터로써 영화의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그녀의 꿈과 사랑으로부터 보여지는 감상이 이 영화의 감정적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랑에 대한 순수한 갈망으로 희망을 보는 '고마츠 나나(미야자키 아오이 역)'은 이 영화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도 동반진행되지만 그녀는 이야기적 측면의 중요성보다도 화자적 측면의 중요성이 강하게 보인다. 과거의 추억에 대한 회상을 독백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두 여자의 만남과 재회 그리고 우정을 잔잔하면서도 적당한 웃음을 곁들이며 진행된다.
이 영화는 풋풋한 봄 미소처럼 화사하면서도 애잔하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심심하고 지루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야오이 문화를 대변하는 것만같은 꽃미남들이 이 영화에 즐비하게 등장하는 것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어필될 여지라는 발언을 뒷받침한다.
이 영화의 나나 중 한명으로 출연한 '나카시마 미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한때 모 방송국의 드라마의 주제가로 쓰였던 박효신의 '눈의 꽃'의 원곡을 불러서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 중의 한명이라니 반가우면서도 의아하다. 가수로 잘 알려진 그녀의 캐스팅은 물론 극중 그녀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가 밴드의 싱어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나 연기에 대한 의심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영화를 보면 그러한 의심은 불현듯 사라진다. 그녀의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고 적당히 영화에 달라붙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또한 또다른 나나인 '미야자키 아오이'의 백치미 넘치는 매력도 귀엽게 느껴진다. 사실 젊은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그녀의 이런 연기도 상당히 즐거운 볼거리가 되어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내면에 담긴 열정적인 시선은 뚜렷하다. 꿈과 사랑에 대한 집념과 고뇌가 아름답게 흐르는 영화의 멜로디는 이 영화의 따뜻한 미소와도 같다. 특히나 영화의 엔딩과 함께 흐르는 나카시마 미카의 'Glamorous sky'도 영화의 심심함을 보상해줄만한 즐거움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젊은 날의 고민과 설렘이 나직하게 존재한다. 20살, 막 성인의 문턱을 넘어오는 그 시절의 낯선 발걸음. 자신의 삶에 대한 꿈이 넘실되기 시작하는 그 시절의 설렘과 그만큼의 걱정이 그 시절에 존재한다. 어느 시절보다도 뜨겁고 뜨거워질 수 있는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은 이 영화의 잔잔함 속에 담긴 달궈지지 않은 열기의 잔해가 아닐까.
한가지 더 사족을 붙이자면 이 영화에는 일본의 대중음악에 대한 탄탄한 기반이 드러난다. 밴드음악이 중심이 되는 일본 음악의 시스템은 클럽문화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수한 밴드들이 양성되고 두드러지면 결국은 메인스트림으로 흘러들어 음악의 다양성에 기여를 하는 것. 국내의 편협하고 상업적인 음악시장을 비추어볼 때 부럽기만 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나(なな)'는 7이라는 의미이며 이 숫자는 행운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적같은 행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꿈을 꾸는 자와 사랑을 하는 자는 행복하다. 자신의 열정이 기반이 되는 삶은 행복을 선사한다. 행복을 지닐 수 있는 것.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여지를 갖춘 사람은 행운아가 아닐까. 모두가 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현실안에서 마지 못해서 삶에 떠밀려가듯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의 극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러한 행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인생을 살아가는 행운을 말이다. 또한 두 여자가 서로를 만남으로써 서로를 통해 교감할 수 있는 행복한 삶으로의 여정에 대한 동반자로써의 가치가 역시나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아련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꿈안에서 사랑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이자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지닌 이들은 행운아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니까. 그 능력을 부여받은 행운아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를 보는 우리와도 동떨어진 능력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에 대한 열정안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영화는 노래한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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