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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kharismania 2006-03-11 오전 2:48:20 1921   [10]

 대체적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다니며 외모에 신경쓰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스스로에 대한 컴플렉스를 지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괴감이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은 충동으로 발전하기에 대리적으로 외적인 화려함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러나 그 비밀의 수위는 누구나 균일하지 않다. 그냥 한두번의 한숨으로 날려버리는 고민일 수도 있고 평생동안 땅을 치며 후회하고 후회해도 지울 수 없는 오점같은 과거를 지닌채 사는 이들도 있다. 과거가 있는 이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않으려 할 뿐 지나버린 기억속의 오점은 흐르는 시간을 역류하며 기억의 주인을 따라 지독하게 좇아온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무언가 야릇하면서도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영화의 제목은 그냥 가벼운 섹스코미디정도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부담없이 뚜껑을 열고 가볍게 입에 털어넣으려 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당혹감에 놀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미묘하면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미묘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분위기의 표정은 모호하지만 노골적인 유혹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는 웃음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그 웃음은 박장대소의 유쾌함과 기가막힌 실소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웃음은 엇박자의 타이밍에서 발견된다. 한발자국 멈춰서다가 들이미는 듯한 웃음은 정적이 흐르듯 무미건조한 질감의 화면과 맞물리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역시나 어색한 웃음의 타이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관객에게 낯설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조은숙(문소리 역)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에 있다. 상당히 가식적이지만 굴절된 동정심을 유발하는 그녀는 기묘한 이야기자체를 대변한다. 그녀의 과거와 그녀의 현재는 상반되면서도 마주한다. 그녀는 여교수로써의 고상함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내면에 숨겨놓은 굴절된 과거는 그녀를 결코 안주하게 놔주지 않는다. 마치 그녀가 다리를 저는 것은 그러한 과거에 잡힌 발목의 무게감때문인 것마냥..

 

 어쨌든 이 영화는 과거를 지닌 이들의 현재를 그린다. 양아치같은 학창시절을 보낸 박석규(지진희 역)가 박작가로써, 역시 양아치와 함께 놀던 조은숙이 조교수로써의 현재가 무시할 수 없는 과거의 무게감을 나직하게 내뱉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지만 묵직할수록 오래가는 과거의 반갑지 않은 향수는 인생에서 예기치않게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잊혀질 듯 잊혀질 듯 잊혀지지 않고 갑작스레 선명해지는 과거는 흐른 세월 너머만큼 공들인 인생에 반전처럼 찾아오는 불길한 손님이다. 마치 조교수로 살아가는 조은숙의 삶에 불연듯 찾아온 박작가처럼..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에 얽매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과거 너머에 오늘을 살고 있는 인물들을 스크린에 투영함으로써 지난 과거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이들에 대한 고해성사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몽상에 불과할 뿐 인물들은 그러한 고해성사보다는 은폐를 실현한다. 여전히 과거는 자신의 기억안으로 깊게 숨겨질 뿐 속시원하게 내던져질 수 있는 용기는 희박하다.

 

 죄진 것은 없지만 죄책감을 느낀다. 지우지 못한 한 개인의 사적인 과거는 집단적인 유희감과 결속한다. 삼삼오오 모여 한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안주삼아 씹어대는 우리네 비속함은 결코 어느 누구의 실투성 과거에 관대하지 않다. 이는 결국 타인에 대한 관심을 빙자한 도가 지나친 관음증을 대변하고 관대하지 못한 폐쇄적인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비소에 상응된다.

 

 이 영화는 천박하면서도 요염하다. 이 영화가 지닌 고의적인 천박함은 영화가 지니는 솔직한 매력이자 눈살 찌푸려지는 고약함이다. 고상함으로 두른 외면의 가식성을 거둔 내면적 속물 근성이 이 영화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상투적인 웃음안으로 감추어진 비열한 욕망이 이 영화에서 암묵적으로 꿈틀댄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은 세련되지 못하게 표출되며 쉽게 환영받지 못할 경우없음으로 나타난다. 관객은 시종일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성도착적인 판타지속으로 질퍽하게 헤매인다.

 

 구상은 좋으나 전달이 불투명한 이 영화는 나름대로 묘한 웃음과 솔직한 단면을 지니나 불친절한 낯설음을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문소리의 연기는 상당히 환영받을 만하다. 자신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거는 몇 안되는 여배우인 그녀는 이 영화에서 특이하지만 감잡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녀의 연기력은 평면적인 연기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우들의 귀감이 될 법하다. 다만 과도한 노출수위로 인한 이미지의 결박 우려는 그녀의 가능성에 발목을 잡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또한 기존의 젠틀맨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껄렁함을 도입한 지진희의 연기도 새로우면서도 자연스럽다.

 

 1997년경에 일어났던 빨간마후라 사건을 기억하는가. 시간은 사건을 희미하게 만들지만 결코 잊혀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물론 옛일은 옛일일뿐. 그런데 과연 그때 그네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린 청소년에 불과했던 그네들이 짊어진 과거를 그네들은 어떻게 포장하며 살고 있을까.

 

 이 영화의 홍보수단으로 쓰여져 논란이 되었던 이 오래된 과거의 이슈가 문득 떠올랐다. 숨겨야만 하는 과거가 있는 이들의 오늘은 행복할 수 있는가. 지울 수 없는 과거와 멀어져야만 한다는 중압감. 그네들은 그러한 중압감과 오늘도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절대 개인적인 과실앞에 쉽게 관용을 베풀지 않으니까. 그것이 자신의 어리석은 과거에 대한 속죄이자 내일에 대한 버릴 수 없는 갈망이 아닐까. 그래서 과거는 과거일 뿐일 수 없다. 은폐되고 유기되어도 여전히 스스로를 압박하는 과거는 잔존하니까. 다만 그것이 타인의 비웃음으로 떠도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어떤 비밀도 일단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자신의 목을 죄더라도 남에게는 태연할 수 있는 이중적인 모순적 가식성. 이것이 이 영화가 지니는 비속한 여유가 아닐까.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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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제작사 : MK 픽처스, 엔젤언더그라운드 / 배급사 : MK 픽처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mkpictures.co.kr/hot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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