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낌이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는 곳이 바로 우리네 세상이다. 특히나 차이점들로만 가득한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 부대낌은 더더욱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바로 그런 곳이다. 빈부에 있어서도 수많은 차이를 내는 사람들, 피부색깔과 출신국가에 있어서 수많은 차이를 내는 사람들이 이 한 땅덩어리 안에서 살아가는데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이런 충돌 속에서 누구는 득의양양할 것이고, 누구는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 할 것이다.
이 영화, 이번에 생각지 못하게 아카데미 작품상의 주인공이 된 영화 <크래쉬>는 이렇게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뜻하지 않은 충돌들로 눈물짓다가 웃음짓기도 하고, 화를 내다가 포옹의 손짓을 내밀기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상에 있어 거의 0순위 후보였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작품상을 못받은 건 상당히 의외이지만, 이 영화 <크래쉬>가 받았다고 해서 불만은 전혀 없다. 그만큼 이 영화, 매우 괜찮다.
이 영화는 하나의 굵은 줄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다 어느 순간 통일된 주제 아래 조우하는 식의 구성을 띄고 있다. 그래서 스토리도 어떻게 딱 집어 얘기할 수가 없다. 한창 흑백 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 활동을 벌이다가 때마침 흑인 청년 둘(루다크리스, 라렌즈 테이트)에게 차를 도난당한 지방검사 부부(산드라 블록, 브랜든 프레이저), 흑인 살인사건을 수사중이면서 한편으로는 라틴계 여자친구를 두었고 감감무소식인 남동생이 있는 형사(돈 치들), 열심히 열쇠 고치는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외모때문에 늘 깡패취급 받는 가장, 작은 가게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역시나 의도치 않은 문제와 부딪치게 되는 페르시아인 가족, 한 인종차별주의적인 경찰(맷 딜런)에게 아내가 성추행을 당하고는 그 상황때문에 사이가 영 틀어진 흑인 부부(테렌스 하워드, 탠디 뉴튼), 몇십년간 흑인들만 고용하며 사업을 꾸려오다 한순간에 망하는 바람에 초라한 처지가 된 아버지때문에 가슴 아픈, 한편으로는 흑인들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는 경찰(맷 딜런)과 이런 파트너때문에 골때리는 젊은 경찰(라이언 필립) 등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하루동안 이리저리 나부끼는 미국 한복판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다중적이어도 너무 다중적인 스토리구조를 가진 영화임에도 영화가 전혀 흐트러진 느낌을 주지 않는 이유 첫번째는 배우들의 연기다. 산드라 블록, 브랜든 프레이저, 돈 치들, 맷 딜런, 테렌스 하워드, 탠디 뉴튼, 라이언 필립 등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헐리웃 유명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이들의 연기는 어느 한 배우가 튀거나 하는 것 없이 모두가 제각기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치며 최고의 하모니를 이룬다. 정말 모두가 설렁설렁 연기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에나 어울릴 법했던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에서 은근히 인종차별적인 면이 있어 거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신경과민의 주부 역을 멋지게 소화해냈고, 맷 딜런은 흑인들 앞에서 어느 순간 몹쓸 놈이 되다가도 가슴 한구석에는 아버지를 위한 마음과 같은 연민의 구석이 있는 경찰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돈 치들, 테렌스 하워드, 텐디 뉴튼 등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다 이들이 어느 하나 튀려고 한 것 없이 서로 하모니를 잘 이룬 모습이 영화의 결을 더욱 살아 있게 만든 첫번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다중적 스토리 구조의 이 영화가 흐트러지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각자의 줄기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주제를 향해 차츰 서로 모아지는 구성에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어느 하나 따로 놀지 않고 몇개씩 중첩되어 어느 순간 상관관계를 이룬다. 이쪽 이야기의 사람들이 저쪽 이야기의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하는 식으로.(이미 이런 식의 옴니버스 영화에서 많이 나온 구조이긴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들이 효과적으로 응축되어 산만한 분위기를 덜어냄과 동시에 "접촉사고"라는 유사한 주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종으로 인한 갈등이라는 공통된 설정이 영화의 진행에 더욱 힘을 실어주지 않나 싶다. 결말을 향하는 순간 같은 소재, 같은 설정으로 출발한 에피소드들이 맞게 되는 많은 결말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과 비교해 볼 때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린 측면이 유난히 강한 면이다. 거기다 아카데미가 지금까지 이렇게 다양한 스토리, 다양한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스토리를 엮어가는 옴니버스 영화에 상을 준 적이 흔치 않았기에 더욱 이변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카데미의 이러한 의외의 판단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파괴력 있는 면을 많이 갖춘 영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정면으로 메스를 가하고 있는 미국내 인종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감동적이면서도 분명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수많은 인물은 자동차 접촉사고, 아니면 적어도 자동차라는 매개체 때문에 서로간의 갈등을 겪게 된다. 자동차 법규 위반, 자동차 도난, 자동차 사고 등등.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종문제로 인한 갈등들은 어떻게 돌려 말하는 것 없이 정면으로 스크린에서 제시된다. 무턱대고 흑인여성을 성추행하는 백인 경찰, 그 앞에서 흑인으로서의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해 그저 봐달라고 빌어야 하는 남편, 엊그제 교도소 나온 듯한 외모라는 이유로 그 청년이 열쇠 바꾸는 일도 영 미덥지 않고, 유색인 가정부가 설거지한 것도 영 만족스럽지 않은 여인, 흑인이라면 무조건 경계부터 하고 보는 사회의 시선에 울컥해서 자동차 도난을 해버리는 흑인 청년들, 타국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도 서로의 입장 차이때문에 갈등을 겪는 가장들 등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 양상들은 영화적으로 보다 예쁘게, 보기 좋게 다듬은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미국 사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만한 날것 그대로의 인종 문제들이다.
이런 인종문제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독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편견이다. 상대방을 향해 차창을 열고 같은 바람을 피부로 느낄 줄 아는 여유가 없이, 무조건 차창은 닫은 채 그저 상대방을 차창 너머로 째려보는 것이다. "저 자식은 운전하는 폼을 보니 딱 초보운전인 것이 사고 많이 치겠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인종문제도 다를 바 없다. 단지 흑인이고 할 일없이 돌아다니는 젊은이로 보인다는 이유로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그 당사자도 차마 인종차별주의자 취급을 받을 수 없어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런 시선을 받는 상대방도 기분을 급강하시키기에 충분하다. "저 사람은 흑인이니까 분명히 생활방식이 난잡할 거야", "저 사람은 백인이니까 항상 깐깐하고 거만할거야"같은 어디까지나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은 나도 모르는 순간 말로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상처를 주기에 충분하다.
한번 굳게 시야를 가로막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 무서운 편견의 벽 앞에서 영화는 어떤 거창한 방안을 내세우진 않는다. 어쩌면 너무 뻔하고 당연한 대책이겠지만, 동시에 제일 바람직하고 수긍이 가는 대책, 상대방이 피부색이 어떻든 그저 "사람"으로 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피부색이 검든 하얗든, 그 사람 역시 나처럼 남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런 일은 당하고 싶지 않고, 나처럼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위험한 상황 앞에서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하고, 똑같이 감정을 갖고 있기에 가슴아픈 순간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피부색이 어떻든 간에 모두가 열심히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나가고 있고, 나름대로의 사연도 갖고 있는게 어떻게 이들 사이에서 피부색만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겠는가 이 말이다. 어쩌면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되는 "교통사고"도 그런 맥락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피부를 맞닿으며 가까워질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는가 싶다. 영화 초반에 "우리는 항상 그 쇠와 유리막에 둘러쌓여 숨어 있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감촉이 그리워서 충돌사고를 낸다"는 말처럼(물론 교통사고를 미화하는 건 아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가장 급박한 상황에서 서로 헐뜯고 상처 주는 건 필요없이 어떻게든 서로 살아보려고, 살려보려고 하는 순간이 바로 교통사고가 아닌가 이 영화는 넌지시 질문한다. 설사 내 잘못이니 네 잘못이니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어도, 어느 순간 저쪽은 괜찮은지, 다친 데는 없는지 하면서 그 어떤 편견이나 감정의 벽 없이 순수하게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순간 말이다.
우리가 항상 영화를 통해 목격하는 해피엔딩처럼, 이렇게 피부색 때문에 치고 박고 싸우는 사람들이 나중에 "우리는 하나"하면서 보란듯이 화해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 영화는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안다. 나는 의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새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이제는 그만 이 지긋지긋한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을 쳐도 그 문제는 이들의 발목을 올가미처럼 옭아맨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상대방의 피부색에 대한 불평은 어느 순간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히고, 무의식적인 편견과 내면의 울분이 갑자기 솟구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또 한번 무서운 편견과 갈등으로 피를 부르고 눈물을 부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편견과 갈등의 그늘을 조금씩 걷어내고 그 그늘 너머로 화해의 손길을 서로 맞잡기도 하는 것이 지금 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특히나 미국이 다인종 사회라 이런 문제점이 부각되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바쁜 미국은 이런 개개인의 갈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쳇바퀴를 바쁘게 굴리며 돌아가고 있다. 영화는 이런 미국 속에서 그래도 좀 살아보려고 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따로 손대지 않고 그저 관찰하면서, 그 속의 비극을 냉정하게 응시함과 동시에 희망과 화해를 곁들여 "그래도 이렇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하며 미소를 날려주기도 한다. 어차피 이렇게 영화를 통해 걱정하고 있는 순간에도 미국이라는 곳은 눈썹이 휘날리게 변하고 있을테니까. 근래 나온 영화들 중에서 미국의 단면에 대해서 가장 다층적으로, 가장 생동감 넘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도 충돌사고는 계속 일어난다. 지금도 계속 충돌은 일어나고 있다. 아카데미가 이런 현재진행형의 현실에도 발을 담그니 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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