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란다. 질문자체가 허무맹랑하고 답은 무수히 많겠지만, 이 지식을 알려준 친절한 영화가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다. 예전에 [돌려차기]를 통해 영화데뷔를 한 현빈이었지만, 제대로 된 원톱영화로 스크린 귀환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늑대의 유혹] 김태균 감독의 차기작이라 흥미를 끌었던 듯하다. 영화의 시작은 [늑대의 유혹] 오프닝씬을 방불케했다. 역시나 비슷한 느낌의 청춘멜로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화산고]때부터 비롯된 김태균 감독의 영상연출 욕심은 여전한 듯 했다.
악질이라고까지 하기엔 너무하고, 바로 그 턱끝까지만 미칠 정도의 오만불손함을 풍기는 예비 백만장자 재경(현빈 분)이 등장한다. 웃어른에게 반말 찍찍하고, 거리낌없는 행동까지 막나가는 젊은 것들(!)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재력까지 갖추었으니, 인생을 즐기는 일만 남은 그였다. 그런 재경 앞에 떨어진 불똥은 다름 아닌 까다로운 상속조건이었다. 그 조건에 맞춰 산골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곳엔 당차보이지만 슬픔을 간직한 소녀 은환(이연희 분)이 있다. 은환은 거침없던 재경에게 머뭇거림을 알게 해 준 존재가 된다. 인과성이 조금은 떨어지지만, 둘은 빠른 시간 내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결말로 치닫을수록 엉성했던 스토리구성은 하나하나 퍼즐처럼 맞춰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분명 뻔한 캐릭터와 뻔한 스토리다. 이렇게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감독은 연출력을 뽑냈고, 작가는 표현력을 뽑냈다. 여기서 작가 소개 아니할 수 없으니, 바로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다. 센스와 위트가 넘치는 글솜씨는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에까지 통하였느냐? ^^a 어찌됐건 작가와 감독의 힘이 스토리나 배우보다 빛을 발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배우도 만만치는 않다. 현빈의 모습은 "내이름은 김삼순"보다 더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연희 또한 진주의 발견인 듯 하다. 하지만 제 소임을 다한 것에 심심한 박수를 보낼 뿐, 이 영화의 매력은 작가의 표현력과 감독의 연출력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모두 고아라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재경은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잃고, 양아버지 밑에서 거칠게 그 아픔을 겉으로 분출하며 도시적인 반항아로 자랐고, 은환은 꿋꿋이 그 아픔을 속으로 지켜내며 순수한 산골소녀로 자랐다. 게다가 은환은 자신을 버린 엄마를 너무 미워해서 벌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심장이 다 타버릴만큼 재경을 사랑해서인지 고장나버린 심장을 가져야만 했다. 재경은 은환을 위해 차츰 변해가고, 은환은 그런 재경에게 미안해 한다. 재경을 아프게 할 걸 알기 때문에,,, 반면에 고맙기도 하다. 이기적이지만 삶의 끝에서 맛본 사랑의 향기가 행복으로 승화될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둘은 너무 힘들고 아파서 눈물이 나지만 그 눈물을 숭고하게 받아들인다. 열밤 자고 온다던 인연을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났지만, 3분이라는 약속과 함께 그 3분이 또 영원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백만장자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일까? 결말의 여운은 깊디 깊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뮤지컬 공연을 통해선 [워크 투 리멤버]를 연상하게 하고, 그네의자에 앉아 사랑을 약속하는 둘의 모습 속에선 [국화꽃 향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초반에 엉성함을 눈치채고 투덜될지라도 어느새 영화가 진행됨 속에서 하나하나 맞물려 들어가는 구성에 감탄하다가 마지막이지만 영원이라는 깊은 여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수확은 바로 이연희라는 배우다. 현빈때문에 영화를 봤을지라도 이 배우를 인정하지 않을사람 있을쏘냐. 극중 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꽃씨처럼 가냘픈 소녀이미지의 은환을 정말 잘 소화했다. 이청아의 아담하고 소박함과, 김정화의 당당하고 시원함을 동시에 뿜어내는 여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류에 속하는 것 같다. 청춘멜로라 하면 가볍게 보일지 모르나, [늑대의 유혹]도 그러했듯이 다시볼수록 그 깊은 여운의 호수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청춘멜로답게 영화의 분위기와 느끼는 감정의 경중을 잘 조절한 듯 싶다. 또한 산골배경을 통한 구수하고 정겨운 느낌과 강원도 사투리의 코믹적 요소는 영화를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코믹적 요소라 하면 '얘들입'이라는 기똥찬 애드립은 영화사 길이 남을 멘트가 아니겠는가.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어찌보면 닭살스런 전형적인 고전 멜로영화다. 다 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민들레꽃씨 얘기나, 첫 눈과 봉숭아물 얘기같이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정말 영화 속에서만 나올거라 생각하는 그런 멘트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마치 예쁜 그림같은 장면이 참 많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 느낌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밍숭맹숭하다는 반응이 허다했을 소재다. 게다가 제목부터 백만장자라는 캐릭터를 단순히 미화하려했다는 안좋은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하마터면 뻔뻔하다고 말이 많았을 영화였지만, 작가와 감독의 힘이 그 대부분을 덮어준 것 같다. 영화 전체를 놓고 본다면 스토리구성도 참 잘 엮여있고 이 정도면 깔끔했다. 느낌도 참 좋은 영화다.
첫사랑은 추억으로 지나가 버리더라도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사랑의 열병이 가슴 아려오는 감성으로 여운지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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