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청년실업 50만 시대이다. 또한 중년으로 접어든 우리 아버지들은 한참 노후준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허울좋은 명예퇴직의 칼날을 피하며 생존게임을 벌여야하는 겨울바람은 현실안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부의 축적은 사람마다 차이가 발생한다.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체계의 친절한 미소속에 감춰진 빈부격차라는 날카로운 이빨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불과유적인 모순적 진리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쇄뇌시킨다. 모두의 배가 부르기는 힘들다. 그렇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굶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배부른 것 이상의 맛과 질을 따진다면 그때부터 굶어야 하는 자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웰빙을 즐기는 있는 자와 하루 한끼가 아쉬운 없는 자의 극단적인 차이로 드러나는 현실이 된다.
딕(짐 캐리 역)은 잘 나가는 회사의 홍보부장. 성채같은 집은 아니더라고 남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집이 있고 그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 제인(테아 레오니 역)과 귀여운 아들이 있다. 능력있는 아버지이자 자상한 남편으로써의 그의 삶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으로 충만한 가정의 가장임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초반부터 또박또박한 어조로 그의 가족을 소개하며 그의 단란한 가정을 보여준다. 또한 딕과 제인의 직장생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출발하는 기본적인 첫인상이자 추후로 다가올 이야기를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기초공사라고 볼 수 있다.
평화로운 일상은 한순간에 처절하게 무너진다. 삶이라는 것은 한치 끝도 알 수 없는 것이라지만 딕은 자신이 몸바쳐 일했던 회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그의 인생은 여지없이 추락의 내리막길로 좌표를 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짐캐리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으로 찾게 될 법한 영화다. 사실 그의 연기에 대한 막연한 인상은 그의 데뷔작인 '마스크'에서 보여지던 철딱서니없는 웃음의 연발에 대한 데자뷰이겠지만 그로부터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거쳤던 영화들로부터 그의 연기가 관록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최근 몇년동안의 연기를 지켜보면 그가 보여주는 웃음 너머의 진지함이 거북스럽지 않은 감동과 더불어 미소짓게 되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그의 최근 연기는 기대되는 측면이 많다.
어쨌든 이 영화도 짐캐리의 장난끼넘치는 코믹성에 기대는 면모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단지 웃음에서 멈추지 않는다. 또한 짐캐리의 연기도 단지 웃음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가 웃기는 배우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그의 발자국이 찍힌 지난 영화몇편에서 여실히 증명되며 이 영화도 단순히 관객을 웃겨보려는 수작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가장으로써의 고독과 비애가 이 영화의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흐릿하게 느껴진다. 직장을 잃었지만 그는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본래 절망적인 캐릭터에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지만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적인 진행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찾는 것은 희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긍정성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극단적인 슬픔의 아련함까지는 배제하지 않는다. 원래 슬픔과 기쁨은 양 극단에 서 있는 감정이라지만 두감정은 서로의 보색적인 기능을 통해서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가치로써의 활용도 가능한 법이다. 이 영화에서 웃음으로 감추는 눈물은 은근한 아련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영화는 가정의 소중함을 나직하게 읊조린다. 가정 불화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집안의 경제사정 악화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여유가 사라지면서 서로간의 이해심도 사라지고 결국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양산되는 불화가 집안을 조각내는 결과를 부르는 안타까운 사연은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 영화가 따뜻한 것은 그들의 악화된 경제사정에 의해 집안이 동강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더욱 결속되는 그들의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단지 웃기는 코미디에서 따뜻한 감정이 실린 웃음으로의 변환이 가능케 함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웃음이 흐믓한 것은 배우의 연기와 맞물리는 상황적인 설정의 코믹함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상황에서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재미가 영화를 시종일관 발랄하게 꾸며준다. 딕이라는 캐릭터가 지니는 유쾌함과 더불어 제인이라는 캐릭터가 공유하는 파트너적인 여유감은 제목만큼이나 상쾌한 웃음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야기가 보여주는 내러티브의 곡선이 리듬감있게 전개되면서 상황의 연출과 인물의 행동이 역설적으로 보여지는 익살스러운 재미가 영화의 웃음에 일조한다는 사실도 나쁘지 않다.
다만 해피엔딩에 대한 닭살이 동반됨은 어쩔 수 없는 행복추구에 대한 집착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될 수 있으나 굳히 이 영화의 해피엔딩에 딴지걸고 싶지 않은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유쾌함이 이미 비극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써의 이미지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상된 결과물에 대한 문제제기는 불필요해 보이는 측면이 아닐까.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우연성에 기반하는 상황연출은 조금 억지스러운 과장성과 결부된다는 우려가 존재함은 사실이다.
이 영화의 웃음은 즐겁지만 가볍지 않은 내면의 부담감도 동반한다. 가장이 짊어져야 하는 운명적인 비애감과 고독감, 그리고 자본적인 여유가 사라지는 가정의 불안과 함께 시작되는 가정의 위상이 흔들림은 분명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재미난 소재로써 활용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범죄와 결탁하는 현실적인 괴리감이 이 영화의 내면에 자리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먼나라의 우스운 영화에서 우리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은 서러운 사연으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은 씁쓸한 발견이 아닐까. 삶을 비추는 웃음이 묻어나는 영화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웃음을 지지한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은 조금 의아스럽다. 원제인 'Fun with Dick and Jane'의 Fun이라는 단어의 발음상 느낌을 따온 듯한 '뻔뻔한'이라는 단어로의 변환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발상이라고 여겨진다. 영화의 이미지와의 연계도 부족할 뿐더러 성의없는 발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