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몇번이나 복수를 한 적이 있다.
병에 걸려 죽게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따귀를 때리고 뼈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말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붙기도 했다.
전부, 마음속에서.
감정의 가장 극단적인 표출이 복수의 감정 아닐까.
그 극단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한 영화감독이 그것을 연작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감정을 삭이느냐, 터트리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들이 감정을 안으로 삭이거나 감춘다. 홧병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그런면에서 어쩌면 박찬욱감독에게 고마워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다지도 격렬한 방식으로 용서없이 복수의 대리만족을 시켜 주었으므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놀란 것은 전작 [올드보이]와는 전혀 다른 '생생함'때문이었다.
[올드보이]가 '스타일'이 살아있는 영화였다면 [복수는 나의 것]은 '리얼함'이 생생한 영화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복수는 나의 것]이 더 좋았다.
종종 필모그래피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세련되어가는 감독들을 보면 서글프다.
이젠 첫사랑을 만나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2046]으로 왕가위가 나에게 서글펐고,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서 역으로 [올드보이]에 대해 서글펐다.
절대로 좋고 나쁨을 명백히 가릴 수는 없고 또 가려서도 안 된다. 하지만 좋고 나쁨을 말할 수는 있겠지. 이건 나만의 개인적인 기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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