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그들의 카메라는 항상 움직이고 있다. 소니아는 아이를 안고 브뤼노를 찾아 헤매고 있다. 까만 무지화면속에 영화의 스탭이 소개가 되고 영화의 제목이 뜨고 나면 카메라는 움직인다.
많은 영화들이 오프닝 타이틀을 위해 제작되는 화면들은 영화의 처음을 알리는 소개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초반 15분이 영화의 몰입을 위해 관객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준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다르덴형제의 영화는 그런 수식들을 거부한다.
관객에게 행복을 줄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다르덴형제의 영화들이 좋은건 정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벗어버린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은 항상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는 사실때문에 영화를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스러움을 느낄수도 있을테지만 극장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더 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이 숨어있기도 한다.
다르덴형제가 길을 걷던 순간 마주친 한 소녀는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었다. 유모차속에는 아이가 있었고 그 소녀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었고. 다르덴 형제는 우연히 마주친 그 소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더 차일드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 소녀는 왜 슬픈얼굴로 거리를 걷고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영화의 틀이 구성되었다면
더 차일드는 그런 소녀가 아이의 아버지인 소년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소년의 이름은 브뤼노이며 소녀의 이름은 소니아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의 이름은 지미이다.
브뤼노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소니아가 지미의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순간 지미를 불법입양을 하는 곳에 팔아버리고 돈을 챙긴다. 그리고 소니아에게는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다. 브뤼노의 말을 들은 소니아는 충격으로 기절을 하고 브뤼노는 소니아를 엎고 병원으로 향한다.
브뤼노는 그 순간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철없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고 지미를 다시 찾아와 소니아에게 안겨주지만 소니아는 그런 브뤼노를 아버지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고 브뤼노를 거부하게 된다.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더욱 큰 짐을 떠 안게된 브뤼노는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갚고 소니아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돈을 훔쳐 돈을 갚고 당당하게 소니아에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브뤼노는 아이의 아버지가 된 상황이지만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보다는 언제나처럼 철 없는 소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여기서 다르덴 형제는 브뤼노에게 철없는 아이가 아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른이 될수 있는 행복의 문턱을 조심스럽게 가져다준다.
그 순간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의 결말들과는 조금 다르게도 영화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순간 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감동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상황을 바라보는것 자체가 슬퍼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속에서 심장의 박동수를 멈추고 행복의 감정을 느끼라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브뤼노와 소니아를 이제는 영화속 스크린이 아닌 현실의 세계로 보내주자고 말한다.
나는 영화의 자막이 올라가던 순간 브뤼노와 소니아 그리고 지미의 미래가 약간은 희망적일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으며 브뤼노가 이제는 소매치기가 아닌 의젓한 아버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것 같다.
한편의 영화가 줄수 있는 가장 큰 기쁨중에 하나는 한발짝 더 나아갈수 있는 사고를 경험하게 해주는것일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더 차일드"를 보고 난 순간의 감정은 분명 그랬던 것 같다.
다르덴형제가 조심스럽게 만들어주는 행복의 문턱을 넘어 그들과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행복해질수 있을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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