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긴 꿈을 꾸고 있다. 감독도 스텝도 배우도 시나리오도 모두 힘을 합하여 아름다운 꿈을 꾼다. 절대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모두 잠을 자면 알게 모르게 꿈을 꾼다고 한다.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 하지만 나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간밤에 꾼 꿈부터 세세히 떠오르는 사람은 하루 종일의 기분을 꿈이 좌우하기도 한다.
좋은 꿈은 깨지 않을수록 좋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누가 깨우기라도 하면 막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깨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꿈만 꾸며 살거냐고. 모든 꿈은 깨기 마련이라고. 그래도 나는 화를 내리라. 꿈을 꾸기 위해 잠을 자는 거라고. 나를 제발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내가 정의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정통 러브 판타지다. 사랑을 꿈꾸게 하는 영화는 절대 나쁜 영화가 아니다. 굳이 대리만족이니 하는 단어를 끌어오지 않아도 영화인데 현실과 조금 다른 것이 뭐가 잘못인가. 오히려 나는 영화만큼은 너무 리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장진감독을 좋아한다. 평범한 삶을 미묘하게 어그러뜨리는 그의 유머가 좋다.
이 영화에서의 가장 압권은 역시 동치성이 인생의 마지막을 걸고(물론 관객들은 마지막이 아니란 걸 다 알고 있다) 비장하게 9회말 2아웃까지 잡아놓고 3아웃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땅볼을 잡았을 때다. 야구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가슴떨림을 느낄 수 있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제발 관중석으로 던지지 마. 그냥 1루로 던져서 영광의 승리를 따내란 말이야! 야구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한이연의 단지 재밌을 거라는 한 마디에 그만 87%쯤 야구인생 끝장날 수 있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나름대로는 비장하게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는 동치성을 보며 너무 웃긴 안타까움이란 걸 느껴봤다.
그리고 웃음 끝에 중얼거렸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장진이 좋은 또 한가지는 자기 영화 속 인물들을 무척 사랑스럽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렇게들 사랑스러운 캐릭터인데 조금만 연기를 잘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영화였다. 정재영까지는 어물쩡 넘어가더라도 이나영의 연기는 한숨이 포옥 나올 만큼 무척 아쉬웠다. 대사만 주입시키면 그대로 연기하는 예쁜 인형같달까. 이나영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퇴조하는 모습을 보면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차라리 <영어완전정복>쪽이 더 좋았어. 하지만 그녀의 마스크는 누가 뭐래도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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