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머릿속에서 쾍쾍 포효하고 있는 킹콩의 잔상은 아마 1976년 존 길러민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 속 <킹콩>일테다. 원작인 <1933년작 킹콩>은 영화 속에 나오는 칼데넘 처럼 거친 탐험과 야생동물 (특히 고릴라)에 깊은 흥미를 가졌던 제작자 겸 감독인 메리언 C. 쿠퍼가 대공황의 절정에 허덕이던 1930년대 초의 대중들에게 현실을 도피하게 하려는 멋진 생각을 킹콩의 포효에 실어 스크린으로 옮긴것이다.
또한 점토와 철골로 만든 뼈대위에 자신의 할머니가 입던 털가죽 옷을 입혀 만든 킹콩의 웃지못할 시각효과는 영화 역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킹콩>이야말로 시각효과가 스토리를 이끌어간 거의 최초의 영화이자, 동시에 그것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매트 페인팅 등 1933년 당시 가능했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킹콩>의 첨단(?)영상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라운 박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킹콩과 티라노가 벌이는 격투 장면, 긴장감과 공포가 생생한 외나무다리 시퀀스,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벌어지는 장렬한 라스트 등은 그 하나하나가 고전이 되어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서 재생산되었다.
<킹콩>은 70 여년의 세월을 지나와 다시 또 한번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 사람을 탄생시켰다. 그는 9살에 가슴에 품었던 거대한 킹콩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고 그 동안 [반지의 제왕] 으로 영화계의 제왕으로 우뚝 서기까지 단 한시도 <킹콩>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하니 다시 말해 [반지의 제왕]은 <킹콩>을 만들기 위한 준비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피터 잭슨의 <킹콩 2005>는 세계 각국 오지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원작의 감독인 쿠퍼를 매료시켰던 '미지의 땅으로의 가슴 벅찬 모험담'을 생생히 살리면서, 킹콩과 금발의 미녀 앤 대로우가 주고받는 고전적인 형태의 '미녀와 야수의 교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제인 야수 킹콩과 주인공 칼데넘이 각각 상징하는 '대자연과 문명의 공존에 관한 성찰'이 완벽하게 어우러짐으로서 마치 여러편의 영화를 한편 값으로 본 것 처럼 가슴뿐만 아니라 주머니까지 뿌듯하게 만드는 영화다.
게다가 1933년 원작에 나오는 거대한 거미 소굴 시퀀스를 아날로그 방식 (모형을 만들어 한장면씩 찍은) 으로 찍은 장면은 피터잭슨이 <킹콩>매니아 들을 위해 복원시킨 깜짝 선물로 손색이 없다.
괴수영화 <킹콩>에는 또한 이 영화를 더욱 진수성찬으로 만든 [타이타닉] 식의 진지하고 클래식한 로맨스도 풍부하고, 패기와 열정이 가득한 감독으로 하여금 돈에 눈이 멀어 <킹콩>을 죽음으로 몰게 만든 헐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비난하는 내용도 담겨 있으며, <킹콩>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낸 [반지의 제왕] 스텝이 만들어낸 신기에 가까운 특수효과와 골룸의 목소리와 연기를 (골룸은 컴퓨터그래픽 이지만 사람의 얼굴과 온몸에 센서를 달아서 만든것이다) 했던 앤디커티스가 다시 한번 "킹콩"의 몸짓과 표정연기를 완벽하게 창조해내어 어느 하나 흠잡을데 없는 리메이크작으로 태어났다.
필자가 이 영화 <킹콩 2005>에 만점을 주고 싶은 이유는, 種의 마지막으로서 해골섬에 홀로 살아 왔을 킹콩의 외로움까지 연출한 피터 잭슨의 연출 솜씨다. 분명 킹콩도 부모형제가 있을 터, 약육강식의 룰 만이 존재하는 그 무시무시한 터전에서 형제부모 다 잃고 더 무서운 '홀로됨' 과 싸워왔을 애처로운 킹콩 앞에 그의 마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식을 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 (그럼 다른 여자들은 다들 못생겨서 마음의 안식을 주지 못하고 잡혀 먹힌 것일까..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녀가 귀여운 몸짓과 애교로 그 무지막지한 괴수의 마음을 빼앗는 장면은 앞서 장면에서 '남자는 관심있는 여자에게 관심 없는 척 한다'는 대사 와 맞물리면서 매우 가슴 따스한 장면으로 각인된다.
때론 잔인하지만 인간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인류와 함께하고 인류의 정복대상으로 희생당하는 '자연'의 거룩함과 <킹콩>의 슬픈 운명이 오버랩 되면서 인간을 사랑했기에 죽임을 당하는 <킹콩>의 운명은, 감동주는게 주임무인 로맨틱영화들을 나앉게 만들만큼 감동적이고 가슴 찡하다.
자신의 터전에서는 거대한 흡혈박쥐의 맹공격에도 그렇게 용맹히 맞서 싸우던 <킹콩>이지만 자연을 정복한 인간의 훈장처럼 거대하게 우뚝 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한 치 오갈데 없이 몇대의 비행기와 싸우다 애처러운 눈길로 뚝!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이지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연인을 나무판자 위에 남기고 물속으로 똑! 떨어지는 장면보다 훨씬 더 절절하고 막막한 슬픔을 전해준다.
무슨 긴말이 더 필요하리. <킹콩>과 함께 한 3시간은 마치 한 일주일쯤 여행을 다녀온 것 처럼 그렇게 설레고 달리고 허전하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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