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마다 해도 주목받는 여자들은 있다. 우리의 역사든 먼나라의 역사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인물들은 시대마다 존재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희대의 기녀 황진이 또한 그런 인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기생이라는 신분은 사실 천민이나 그 출신은 높은 집안 고귀한 출신들이 많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몰락한 양반 집안의 여자들이 기생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어쨌든 기녀들은 우리가 아는 홍등가의 여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여자라고 볼 수 있다. 황진이만 해도 기녀의 신분으로 절개를 지키고 시, 서, 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서경덕, 박연 폭포와 함께 송도삼절이라고 까지 불린 명기로써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게이샤는 일본의 기녀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게이샤란 단지 술 따르고 남자들과 희희낙락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전적인 예우를 갖추고 이 글을 읽어 줄 것을 당부하는 바다. 극중에서도 등장하는 대사를 인용하자면 게이샤는 노래를 팔고 춤을 파는 예술을 파는 여자이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란 말.
어쨌든 이 영화는 꽤나 오랜시간 입질을 들인 끝에 세상에 나왔다. 사실 이영화의 제작소식을 들었던 것은 벌써 한 4년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우리의 영원한 영화계 거장인 스필버그 감독이 꽤나 흥미를 가지고 추진했던 프로젝트였고 우리나라의 김윤진에게도 캐스팅 섭외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는 사실까지 이 영화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어쨌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이 작품은 이미 엄청난 기대감을 갖게 만들 수 없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 공개된 티저포스터만 봐도 장쯔이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자태가 가히 신비롭기 그지없어서 그러한 기대감을 부채질하는데 한몫했다.
일단은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리고 그 아서고든이 집필한 동명의 원작 소설도 실존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사유리라는 당대 최고의 게이샤의 10년간의 일생을 소개한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고 해도 좋다.
일단 시작은 사유리가 아니다. 처음부터 게이샤로 태어난 여자는 없으니까. 어떻게 그녀가 게이샤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사전설명이 필요할테니까.
사실 사유리의 본명은 치요다. 사유리는 그녀가 게이샤가 되어서 받게 된 이름이다. 말그대로 이영화는 치요가 사유리가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단지 그녀가 게이샤로써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게이샤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운명을 택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여유로우면서도 고상하게 묘사한다. 치요가 사유리로 변화하는 건 단지 이름의 변화가 아닌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성숙을 의미함을 영화는 과장도 꾸밈도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객 스스로가 알아듣게끔 서서히 흘려보낸다.
이 영화는 상당히 디테일하면서도 감성적인 면모가 뛰어나다.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세밀하면서도 여유있는 자태를 잃지 않는다. 90년대 초반의 도쿄를 마치 미국으로 옮겨놓은 듯한 거리의 모습이나 화려한 게이샤의 의상과 몸짓은 진풍경이자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자본력이 이만큼 유용함을 과시할 수 있는 측면이다. 또한 인물들간의 내면묘사와 구조적 관계를 섬세하면서도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배우들의 녹록치 않은 연기력과 스탭들의 연출력에서 얻어낼 수 있는 성과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뛰어난 배우들을 섭외할 수 있는 건 제작진과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이 영화에서 게이샤로 출연하는 여자배우들은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인물들 아닌가. 장쯔이를 비롯해서 공리, 양자경 들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이 영화의 우아한 미모를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와타나베 켄과 아쿠쇼 코지 등의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배우들은 영화의 관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치 중국의 여자 배우들과 일본의 남자배우들이 합심이라도 해서 서양인들의 기획을 동양배우들이 현실화시켜 주고 있는 양상이다.
어쩄든 영화는 여성의 미를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여리고 나약한 그녀들의 감성을 표출한다. 또한 그러한 아름다운 유약함을 극대화시켜주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촉매로 활용한다. 사실 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영화라기 보다는 한 여자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법한 영화다.
사유리는 연모하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게이샤의 길을 택한다. 그러나 게이샤의 길은 그녀의 사랑으로 가는 길을 번번히 방해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이 짙어지고 그 아름다움의 칭송이 커질수록 그녀의 가슴에 품은 사랑의 열망도 짙어진다. 그녀가 품은 사랑의 바늘은 항상 그를 향하지만 현실의 벽을 뚫기엔 바늘이 너무 약하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게이샤로써의 인생이 오히려 그에 대한 애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한 여자로써의 사랑이 중심 포석에 놓여있는 영화지만 그 테두리에 면밀하게 자리잡은 인물들간의 구도 역시 흥미롭다. 특히나 하츠모모(공리 역)와의 대립관계와 마메하(양자경 역)와의 인연관계 등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물들과의 인연과 대립구조를 통한 감정흐름의 묘사도 탁월하다.
특히나 롭 마샬 감독의 작품인만큼 게이샤로써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가무장면은 가히 환상스러운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의 작품인 '시카고'를 떠올린다면 이러한 사실은 신기할 이유가 없지만..어쨌든 여러가지로 이 영화는 뛰어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소리소문없이 불쑥 찾아온 영화지만 어떤 소문난 잔치보다도 먹을 것이 많다. 장쯔이의 연기는 충분히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며 그러한 아름다움 이면에 표류하는 슬픔과 연민, 불안감의 정서를 관객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한다.
참 아름다운 영화다. 게이샤라는 하나의 신분적 직업을 통해 여성의 외면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적인 아름다움 모두를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영화다. 단지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이기 이전에 사랑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여자라서 그녀는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족>최근 장쯔이가 와타나베 켄과 함께 애정씬이 있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난리라는 뉴스를 들었다. 어느 정도 수위길래 그런 것일지 오늘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러한 여론 반응에 편집되었는지 그런 장면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마도 중국에서의 흥행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서 인지 편집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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