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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린 감성 태풍
kharismania 2005-12-14 오전 1:59:06 1932   [5]


요즘은 뜸하지만 몇년전 TV뉴스를 통해서 탈북자들이 중국에 있는 대사관을 월담해서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하는 것을 자주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하나 둘이었던 것이 이젠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니 중국정부에서도 이를 심각한 외교적 문제로 인식하고 각국의 대사관 주변경계를 철통같이 하여 이러한 사태의 확산을 막고자했다.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시도했고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을 오는데 성공했고 어떤 이들은 공안들에게 연행되어 갔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대한민국을 온 어떤 이들은 물론 해피엔딩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면 조금 혼나고 말았을까? 그건 아니었겠지. 그럼 과연?

 

 한 사내가 있다. 빨갛게 충혈된 눈빛은 그의 분노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머금은 채 쓴웃음을 짓는 그 사내의 이름은 '씬(장동건 역)'이다. 알고보니 북한출신의 탈북자라고 한다. 그는 남한사회 전체에 뼈에 사무친 원한을 지닌 사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남한에 증오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그는 위험하다. 그의 분노의 이유야 어찌되었건 원인을 알기전에 심각하게 나타날 결과가 예사롭지 않기에 분명 그의 질주를 막아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세종(이정재 역)'은 그를 막기 위해 대만으로 떠난다. 단지 나라를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떠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버지처럼..

 

 이 영화는 거친 남자들의 영화다. 두 주인공이 모두 남자인만큼..그래서 선이 굵은 특징이 있다. 등장하는 여성인물도 씬의 누나로 등장하는 명주 역의 이미연을 제외하면 없다. 그만큼 강렬한 맛도 있지만 그만큼 영화가 투박한 맛도 있다.

 

 거친만큼 영화의 액션도 빛을 발한다. 특히나 후반부의 해양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은 처절하고 격렬하다. 또한 외국영화에서나 보여지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국내의 해군장교들을 모델로 해서 만든만큼 우리에게는 리얼한 맛도 있다. 여러가지로 스펙타클한 액션씬은 이 영화에서 자부해도 좋을 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에서 느껴지는 특수한 멋 또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중 하나다.

 

 이 영화는 무언가 거대한 이미지를 머금고 있다. 우리 분단된 역사의 서글픔과 함께 그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이들과 그러한 희생을 밟고 살아가는 현실의 우리와의 경계를 허물려고 한다. 또한 한 사내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쉽게 외면하는 안타까운 역사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나도 막연하게 민족적 감성을 자극한다. 기존에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영화계가 부상하게 된 큰 촉매가 되었던 '쉬리'를 필두로 '공동경비구역 JSA'나 작년 큰 흥행 쌍두마차였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가장 최근 기억에 남는 '웰컴 투 동막골'까지 여러 영화에서 회자되어 왔던 소재다. 다만 그 사용방법이 각기 달라서 관객들에게 다른 감성으로 어필되는 면이 있었지만..

 

 이 영화 역시 우리네 분단현실로부터 계기를 얻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분단 현실의 아픔을 우리사회에서 끌어낸 것이 아닌 저 윗동네 북한의 억압받는 동무들의 사연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한 국가가 집단적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외면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아픔을 통해 관객에게 씬의 분노에 대한 동감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진행되는 영화는 그러한 감성의 동감을 유지시키는데 역부족이다. 개인적인 정서적 비극의 진화가 아닌 국수주의적인 경직된 발상으로의 변질됨으로써 관객의 감정혼선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후반부엔 어느새 씬의 비극적인 감성은 메말라버리고 남은 건 단지 국익과 이념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국수주의뿐이다.

 

 또한 인물들간의 교감 또한 의심스럽다. 씬과 세종간의 이유모를 동질감 형성의 원인 역시 설명이 부족하고 씬과 한배를 타는 동지들과의 유대감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어색한 면모가 있다.

 

 감성의 유지가 영화의 스펙타클해지는 진행과 더불어서 거대한 파도속에 침몰해가는 형세다.

 

 사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보여줄 것이 많다. 애초에 블록버스터니 어쩌고 떠들었지만 볼거리보다는 느낄 것이 많은 영화임이 확실했다. 눈물맺힌 사연을 통한 한 사내의 드라마틱한 운명적 사연에서 뿜어져나오는 비극적인 애잔함에 더불어 남자들만의 의리와 우정에서 나오는 마초적 비장감까지 감성을 자극하는 면모가 다양했다. 그러나 영화는 아쉽게 이러한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장동건의 연기는 출중하다. 한때 꽃미남 연애인이었지만 지금 그는 진솔한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다만 지난 두편의 영화가 가져다 준 흥행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이 영화가 메꿔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정재 역시 군인으로써 남성미있는 캐릭터의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영화에 대한 실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기 떄문이다. 기대감을 갖는 것은 본인 탓이지만 영화가 그만큼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태풍'은 분명 그만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쓴 평가로써 그 책임을 져야할 수 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실망이라고 말하기는 모호하다. 이 영화는 단점이 존재할 뿐 그걸 덮어줄 만한 장점도 많은 영화니까.

 

 그래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사는 이 현실을 지상낙원처럼 꿈꾸는 이들이 북녘너머에 많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말해준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월담이 그냥 그런 뉴스거리지만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무시무시한 생존의 경계다. 그러한 지옥같은 현실을 완전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옆동네 개보듯 웃어넘기지는 말라고 씬은 말하고 있다.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던 땅에 지니는 분노를 이해해주고 기억해주길 그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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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2005, Typ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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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페이지 : http://www.typhoonthe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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