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혹은 몇 년에 한번씩 한국무협은 꾸준히 영화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무협이라하면 [무사], [비천무], [단적비연수]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모두 흥행면에서는 제작비나 스케일, 그밖에 캐스팅이나 마케팅에 비해 턱없는 참패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모두 호감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다. 한국무협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본인으로서 이 글이 알바라고 딴지 걸 사람들은 그냥 이쯤에서 창을 닫아주길 바란다. 그래도 우긴다면 나도 무보수의 알바라고 자칭하고 싶다. 그럼 이제 조금이라도 부담이 없는 분들과 얘기를 시작해도 될는지...
한국무협은 위의 대표적인 3영화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그 틀을 유지해오고 있다. [낭만자객]같이 코미디를 그 필두에 내세운다거나, [형사]같이 영상미를 강조하면서 독특한 퓨전장르를 개척한다거나, [화산고]같이 두 영화의 공통분모를 채운다거나 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오랜만에 정통무협스타일의 [무영검]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적지 않은 관심사가 초래되었지만, 이번에도 흥행면에서는 떨떠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 때로는 결과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한국무협에 있어서 내용이나 과정이 중요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믿기에 이 영화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본 것 같다.
926년 발해라는 공간적·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무협이라는 픽션 앞에 우리의 역사라는 당찬 오프닝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충분히 호기심 자극이고, 관심 증폭의 느낌으로 초반부를 사정없이 지른다. 그 선두에 거란군의 척살단주 군화평(신현준 분)이 있다. [장군의 아들],[은행나무침대],[비천무]에서 보여준 면모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무협에 너무 자연스러운 신현준이다.(특히 악역...) 초반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거란과 발해는 침략전쟁중이고 발해의 마지막 남은 왕자 대정현(이서진 분)을 암살로부터 지키기 위해 발해의 여자 무사 연소하(윤소이 분)가 머나먼 여정의 보디가드가 되어준다는 이야기다. 처음 소하가 중원으로 가서 정현을 만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꽤 흥미로우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서 나오는 망나니 컨셉 이서진의 모습은 자칫 가벼워 보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다른 주요인물들의 캐스팅이 꽤 카리스마 강한 이미지 캐스팅이라는 점에서 이서진의 그 여느때처럼 어줍잖은 모습은 관객들에게 쉽고 평범한 역할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이 부분의 묘미다. 진지하고 의젓해도 너무 그 정도가 심한 소하 앞에서 정현이 보이는 언행은 바로 무협의 본질적인 유머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무협장르하면 코믹적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초중반의 많은 까메오들의 출연과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이 영화가 그부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가 무협이라면 액션은 뭐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결투씬은 충분히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화면을 압도한다. 특히 연소하와 매영옥(이기용 분)의 배틀이 여러번 나오는데, 둘 다 정말 무협에 적격캐스팅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액션뿐 아니라, 무협장르에서의 많은 장점을 분출해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실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날라도 너무 날라 다니면서 허우적대는 배우들의 모습 속에서 왜 그리 웃음이 터지는지, 참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무협액션하면 와이어액션이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당연히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춰 연출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무영검]이 외국에 수출되었다고 하던데, 우리의 그 실소가 외국사람들의 비소로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다가 [무영검]이 최초의 수중액션이라 자부하는 그 장면, 호감있게 본 나조차도 그 부분은 없앴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그 부분을 너무 슬로우 하고 디테일하게 살렸기 때문에 더욱 거부감이 든다. 유치찬란의 극치이지만, 그래도 그 참신한 시도 속에 심심한 박수를 보내줘야할 것 같다. 솔직히 무협영화를 보고 말도 안되고 유치하다고 싫어한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안된다. 바로 그것이 무협의 본질인데,,, 유치함 속에서 과장된 상황 속에서 무협의 재미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무협류의 만화나, 소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망상적인 그런 상황에 대한 동경을 조금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기에...
영화는 무협의 또 하나의 요소인 로맨스를 잔잔하게 깔아준다. 비록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나 무협에서 로맨스는 이루어지건 못 이루어지건 애틋함으로 남게 마련이다. 정현의 침소를 지키는 소하나, 소하의 병석을 지키는 정현이나 교차하는 그 영상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틋함은 음악의 서정성과 어우려저 무협장르에 잘 녹아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제목답게 검의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로맨스에 묻어간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것을 강조함으로써 또 한번 무협의 본질을 깨우친다. "검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드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드는 것입니다"라는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고나 할까? 장르를 떠나서 멋진 대사인 것 같다.
초반의 단순하고 진부한 내용이라 언급했던 부분은 영화의 단점을 얘기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무협액션영화이긴 하지만, 스토리에 있어서 얼마나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정현과 연소하 그리고 군화평과 매영옥은 그 관계에 있어서 비슷한 구도를 이룬다. 비록 선과 악으로 대비되고 있을 뿐, 동일선상에 있다. 사건과 인물의 내막에 관련된 스토리 전개는 꽤 깔끔한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현재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가슴 속을 사무치게 하는 과거사 왜곡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물론 당연한 사실이지만 발해라는 역사를 우리역사라고 당당히 내세우는 그 자부심이 좋다. 그리고 [천군]의 마지막 장면처럼 희열과 감동의 벅차오름을 느끼게 하는 엔딩은 영화의 자신감을 충분히 드러냈다.
[무영검]... 맵지 않은 김치일까? 우리나라 무술팀이 많이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김치는 매워야 한다. 느끼한 중국의 김치나, 싱거운 일본의 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중국도 서양의 특수효과를 받아들여 무협장르에 접목시키면서 자신들의 것으로 승화시켰고, 일본도 사무라이라는 전통적인 무협을 지니고 있기에 [킬빌]이라는 퓨전장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무협은 그 보다 역사도 짧고 내세울 것이 뚜렷이 없지만, 우리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진정한 한국무협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가 그 과도기 속에 있기를 바라면서 훗날 발전할 한국무협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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