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0피트의 상공을 나는 비행기안에서 어머니와 딸이 타고 있다. 그런데 잠시 어머니가 잠든 사이 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딸의 행방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밀폐된 비행기 안에서 사람이 없어진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믿기도 힘든 사실이다.
이런 믿기 힘든 사실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에게 입장료를 요구하며 극장가에 버젓히 걸려있는 영화가 있다. 'Flight Plan'..과연 얼마나 치밀한 계획으로 관객들에게 그럴듯한 비행을 보여줄 것인가.
영화는 시작부터 여기저기에 관객을 혼란시킬 복선을 고의적으로 흘리고 다니면서 관객을 교란시킨다. 관객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보다는 영화의 흐름에 끌려가며 의문을 유지한 채 일말의 가능성만을 고려할 수 있는 코너로 몰린 채 영화를 감상해야만 할 듯 싶다.
그러나 싸이코쓰릴러의 분위기로 관객을 교란하던 영화는 중후반부부터 그 탈을 벗어던지고 노골적인 형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의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며 스크린을 주시하던 관객들을 농락하듯이 여기저기 가지치듯 배열해놓은 의심스러운 복선들을 걷어치우고는 빠른 속도로 결말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심리적인 면과 액션적인 면의 쓰릴러를 전후반에 나란히 배치시킴으로써 잠재되었던 영화의 긴장감을 후반부에 집중하여 폭발시킨다.
물론 이영화가 다분히 새롭고 도전적인 소재나 구성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이 영화보다 뛰어난 쓰릴러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를 꼽으라면 열손가락이 모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그 영화가 졸작이 되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 훌륭하다. 스토리의 구성도 나름대로 군더더기없고 쓰릴러 영화로써 갖추어야 할 긴장감도 충분하다. 다만 치밀함을 보충하기 위한 우연성의 배치는 조금은 억지스럽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남을 수 있는 옥의 티라고 여겨진다.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비행기라는 밀폐성을 지닌 특이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혼란이 발생할 경우 인간의 심리상태에 밀폐된 공간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바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공포를 조성한다. 특히나 영화의 카메라 워크는 그러한 특수함을 최대한 이용하여 관객에게 시선이 머무는 곳과 머물지 못하는 각도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도 훌륭한 건 3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조디포스터의 힘이다. '패닉룸' 이후로 스크린을 떠난 그녀의 복귀를 부른 이 영화는 그녀의 전작과 닮은 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모정으로 딸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악당과 맞서는 그녀의 캐릭터를 비롯해 패닉룸과 비행기의 밀폐성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든 그녀의 연기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빛난다. 확실히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건 그녀의 외모가 증명하지만 세월이 연기력까지 퇴화시키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녀가 증명한다. 그녀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흔히 뉴스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납치나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심각한 사건들은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에게는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겠지만 그와 관련이 없는 타인에게는 그저 그런 뉴스거리로 전락할 뿐이다.
현대문명의 발달과 함께 개인의 편의가 강조되고 중요시되는 요즘,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이기주의로까지 발전해 나가는 세태에서는 타인의 괴로움조차도 본인의 무관심속에서는 귀찮은 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한 타인에 대한 무관심..자신의 편의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세지가 아닐까.
또한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911테러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충격과 공황의 여파는 여전히 그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특히나 비행기는 잊지 못할 그 날의 핵심무기였기에 약간의 징조앞에서도 그 날의 악몽을 떠올리는 그네들의 상처를 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미국인들의 상처입은 자존심의 앙금을 드러내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란 존재가 자식을 위해서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세계평화를 위해 테러범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영웅보다는 자식을 위해 악당에 홀로 맞서는 어머니의 모습이 좀 더 현실적이고 쿨하지 않은가. 특히나 그녀가 비행기 엔지니어였다는 사실이 그녀의 전투력에 항당함을 느끼지 않을만한 근거가 되어줌으로써 현실감에 완벽한 보충제가 된다.
완전 새롭지는 않지만 진부하지도 않다. 나름대로 명배우의 명연기로 영화는 힘을 얻는다. 후회보다는 적당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입장료는 그다지 아까워보이지 않을테다. http://www.cyworld.com/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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