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정도의 감독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욕은 뭘까? '재미가 없다' 거나 '작품성이 낮다'같은건 의미가 없다. 어떤 영화든 사람마다 느낌이 틀리기 마련인건 당연하지만 그의 영화만큼 하나하나마다 각양각색의 평 가를 받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흥행성적이 안좋았던 <화성침공>도 그의 베스트 목록에 꼽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내용면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최근작 <슬리피 할로우>도 팀 버튼 영화 로서의 '기본'은 해준다.
답은 간단하다. 바로 팀 버튼 영화답지 '못'하다는 거다. 초기작 <비틀 주스>든 <배트맨>이든 <슬리피 할로우>든 오로지 팀 버튼 만이 할 수 있 는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혹성탈출>은 아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팀 버튼 답지 않다는 것, 즉 다른 누군가 만들었어도 이 정도는 했을거라는 것. 딱 한번, 초반에 레오(마크 월버그)를 비롯한 인간 들이 잡혀올때 보이던 원숭이 도시의 원경만이 바로 그 '팀 버튼 분위기'였다.
물론 릭 베이커의 분장은 도저히 가면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굳이 팀 로스, 헐레나 본헴 카터 등의 유명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있었나라 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런 분장도 팀 버튼의 이름값을 유지시키는데는 별 도움이 되질 못했다.
감독 스스로 리메이크가 아닌 재창조(re-imagination)임을 주장 했다고 해도 원작과의 비교는 불가피하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바뀌고, 원숭이 도시 구조가 바뀌고(부락형태->도시형태), 인간과 원숭이간의 의사소통 이 가능(영어)하다는 것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다. 레오를 영웅화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 반대다. 지나친 영웅주의보다야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레오는 시종일관 자기 혼자 살아남 아 보겠다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역력하다. 위치 추적기가 가리키는 방향 으로 서둘러 이동하려는 건 그저 빨리 이 이상한 혹성을 떠나버리고 싶 어서 서두르는것 뿐이다. 그는 결국 목적을 이루었고 아무 미련없이 떠 난다. 원작의 찰턴 헤스턴보다 마크 월버그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배우 자체의 아우라가 부족함도 있긴 하지만 이런 행동에서 기인하는 바 가 크다고 본다. 물론 찰턴 헤스턴도 떠나기는 하지만 이처럼 자기 밖에 모르는 철부지는 아니었다.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했다지만 원숭이-인간 간의 대규모 전투씬도 <브레 이브 하트>나 <글레디에이터>를 떠올려 보자면 시시할 지경이다. 너무 안일한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팀 버튼은 자신의 개성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데다 재창조는 커녕 원작을 조금 흉내내려다 그친 정도가 되고 말았 다. 자신의 팬과 <혹성탈출> 팬 모두를 실망시킨 셈이다. 다행히 가능 관람등급이 높지 않으니 원작을 모르는 학생층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질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