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도시...
그리고 사람들로 정신없는 백화점...
한 여자가 아이를 때리고 있다.
그 여자는 이 아이의 계모였고 아이는 아줌마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여인은 이런 아이들 쉴틈 없이 때리고 있다.
잠시후 주방도구는 살인도구로 변하면서 이 여인은 끔찍한 살인을 당한다.
이후 옷가계를 운영하는 20대 후반의 여인이 살해 당하고 그 여인과 불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역시 살해당한다.
이어 택시 운전기사, 그리고 음식점 주인의 아들까지...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는 언제나 오로라 공주 스티커가 있고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건 속에는 알게 모르게 공통점이 숨어 있었다.
한편 이 사건을 맡은 오형사와 정형사는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외제차 딜러인 정순정을 생각하게 되는데...
아뿔사... 오형사... 그러니깐 오성호 형사의 부인었던 것...
점점 이상하게 꼬여만가는 사건들...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
배우 방은진이 감독이 되어 돌아왔다.
이전에도 방은진은 단편 영화 감독을 여러번 맡아 이미 장편을 위한 워밍업을 마친 상태...
외국에는 배우들이 감독을 겸업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 최은희 이후 배우와 감독직을 동시 수행하는 이는 사실 찾기 힘들었다. 방은진과 더불어 유지태가 최근 단편과 장편을 선보이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있는데 기대 이상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방은진 감독의 등장은 배우의 감독 겸업선언 뿐만 아니라 또다른 의의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스릴러를 만들 줄 아는 여감독이 적다는 점에서 그녀의 등장은 매우 환영할만 일이다. 헐리웃을 보더라도 'K-18'과 '웨이트 오브 워터'를 만든 케서린 비글로우가 스릴러와 뿐만아니라 남성영화에도 도전장을 걸어 화제를 모았는데 이런 것을 보자면 우리나라 여감독들이 스릴러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아보였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문제인지 기타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 감독들이 만드는 스릴러는 사실 그렇게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런 것으로 볼 때 방은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스릴러라는 점이 주목할만한 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스릴러와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보통 스릴러들이 뒤에 화끈한 반전을 준비하거나 범인을 끝 아니면 중간 쯤에 밝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작품은 아예 시작부터 범인이 누구라는 것부터 알려주기 시작한다. 대신 이 작품은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르는 현장을 먼 곳에서 관객이 같이 지켜보고면서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는 것을 알려줬으니 작품의 재미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방은진 감독은 여기저기 장치를 잘 꾸며놓았다. 우선 도입부의 백화점 살인사건 이후 또다른 네 명의 살해자가 등장하고 이들 연쇄 살인사건이 서로 관계도 없을 듯하게 보이지만 알고보면 이리 저리 얽힌 모습들이 많다. 특히 첫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살인은 서로 관계가 있을 법하게 보이지만 앞의 두번째와 세번째 살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도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
이 작품은 네티즌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우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비교하여 복수의 정당성이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서 찬사를 보낸 이들도 있었으며 반대로 복수를 할 만큼의 동기가 확실히 부여되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후자이다.
처음에 물론 이들을 순정의 살해 동기는 좀 약해보였고 부실했다. 그래서 무슨 저런식으로 영화를 만드나 싶었는데 거의 말미에 작품을 보게 되면 이들 살해된 다섯 사람들과 순정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와는 아주 밀접한 아니면 그것도 아닌 간접적인 관련이 있었고 그것이 살해 목적이 된 것. 방은진 감독은 참으로 똑똑했다.
하지만 동기부여는 납득이 가지만 크게 와닿을 정도는 아니다.
가령 택시요금이 부족한 피해자를 두고 내린 택시운전기사나, 피해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빨리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것이 또다른 살해자였던 음식점 주인 아들과의 접촉사고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피해자를 위한 진정한 복수라기 보다는 억울해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만 골라 죽이는 화풀이성 복수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영화에서는 그 피해자를 위한 피의 응징처럼 묘사하지만 몇몇은 그에 동의하지만 몇몇은 순정 본인의 피해당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것을 생각할 때 복수의 정당함이 좀 약하다고 느껴진다.
이 영화 역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종교적인 이야기도 어느정도 삽입되었다.
바로 죄를 짓고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장면들인데 우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금자가 교도소에서 새 사람이 되기 위해 교회 신앙 간증회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나 출소후에는 악날하게 복수를 감행한다. 금자는 그 복수를 감행하면서도 구원받고 싶어했으나 구원 받기는 실패한 것 같다.
반대로 '오로라 공주'는 순정보다도 성호의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왜 형사인 성호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성경를 들고 다니며 기도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용서를 구하고 본인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인데 결국은 금자처럼 성호 역시 구원받는데 실패한다.(이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결국 성호는 목사가 되길 포기한다.)
그 구원의 실패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다섯명의 사람이 살인되고 변호사 역시 살해 위협에서 벗어나지만 그것으로 이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원인이 된 것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치 복수가 전염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맨 마지막 장면을 보고 좀 씁쓸하긴 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 엄정화와 '노사모'등의 정치 활동으로 스크린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문성근... 이 두 사람의 언발란스한 만남은 생각보다 어울리지 않을 듯 보이지만 무척 잘 어울렸으며 영화를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배우들이었다. 정형사 역을 맡은 권오중이라던가 최종원, 그리고 이스트 필름과 땔 수 없는 사람들인 박광정이라던가 정은표 등의 우정출연은 역시 명계남 사단의 작품 답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게 된다. 아울러 살해당하는 다섯명의 살해자 중 현영, 김용건과 같은 배우들이 짧은 장면이지만 나름대로의 제 역활을 해 준 것 같아서 좋았다.
사실 '오로라 공주'는 90년대 쯤 방송되었던 만화 '별나라 손오공'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다.
공주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작품속에서 오로라 공주는 매우 우울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 우울한 모습이 엄정화를 통해 전이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한 이 우울함을 서울의 밤거리를 통해 방은진 감독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로라 공주여... 이제 어두운 모습에서 환한 미소로 돌아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