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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살아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jimmani 2005-10-06 오전 1:28:57 4869   [16]


<스포일러 좀 있음>
 
이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우리나라 영화사상 유례없는 대단위 캐스팅에다가 멀티스러운 줄거리, 거기에 평단의 평까지 좋아서 정말 기대했던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보기 전에 원망의 시선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흐르는 포스터에서부터 시작해서, 예고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누가 가을 아니랠까봐 스산한 가을을 따스하게 달래려는 커플용 달콤한 사랑이야기처럼 보여 솔로의 입장으로서 참 원망스러웠다. 봄이나 가을만 되면 이런 영화를 한꺼번에 내놓는 제작자들을 형사처벌이라도 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내 생각들은 영화를 보고 나온 이후에 말끔히 사라짐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에도 여느 가을용 멜로물처럼 가슴 시린 사랑, 따뜻한 러브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걸 궁극적 목표로 내세우진 않았다. <러브 액츄얼리>가 정말 사람 마음 데우는 데에는 한 내공 하는 영화지만 크리스마스에 절대 혼자 보면 안되는 영화인 만큼 그 멜로의 포스가 상당했던 데 반해, 이 영화는 '사랑'을 궁극적 주제로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 그 이상의 '삶에 대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노력한 듯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어떻게 요약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인물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거기다 그 이야기들이 교묘하게 옷깃을 스치듯 스쳐가기 때문이다. 이혼 경력이 있는 당당한 정신과 의사 유정(엄정화)과 그녀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생애 첫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형사 두철(황정민), 가난에 굴하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빚과 임신 문제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는 창후(임창정)와 선애(서영희), 일찌감치 은퇴하고 빚 독촉하는 일을 하다가 난데없이 딸이라고 주장하는 아이(김유정)의 부탁을 받고 다시금 농구공을 잡게 되는 전직 농구선수 성원(김수로), 줄어드는 손님들 앞에 극장 내놓기를 눈앞에 둔 고집센 곽 사장(주현)과 그의 극장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경영해온 만년 배우지망생 오 여인(오미희), 한때 잘나가던 아이돌 스타였으나 기획사의 버림을 받고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되는 정훈(정경호)과 그를 멀리서 지켜보며 짝사랑해오던 수녀 수경(윤진서) 등. 다 열거하기에도 숨찬 이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때론 명확히 연결되고 때론 스치면서 전개된다.
 
우리가 흔히 이렇게 캐스팅이 화려한 영화들을 기대하면서도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 등장인물들이 화려하고 많아서 영화가 이들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헛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봐온 적이 적지 않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다행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배우들의 연기는 단순히 그들이 단체로 얼굴을 내미는 수준 이상의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스토리의 전개 역시 여러 에피소드가 나름대로 뻗어나가면서도 제각기 교차로를 형성하며 혼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복합적으로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나갔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 면면을 보자면, 역시나 이름값하는 배우들이 이름값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이한 건, 이들이 서로의 이미지와 다소 반대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진지한 쪽의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의 인상이 강했던 엄정화와 황정민은 전문 코미디 배우 뺨치는 치고 받는 코미디 연기를 훌륭하게 보여주었으며, 반대로 코미디 배우의 인상이 강했던 임창정과 김수로는 의외로 상당히 진지하고 깊은 내면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오랜 내공을 자랑하는 중견배우 주현씨와 오미희씨는 역시나 내공에 걸맞게 아무렇지 않은 듯 부대끼고 살갑게 감정을 드러내는 감칠맛나는 러브스토리를 재미나게 보여주었고, 신인급인 윤진서와 정경호도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 입체적인 캐릭터 덕분인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각각의 배우들이 단순히 얼굴을 비친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정말 단독 주연이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진정성이 보이는 연기를 보여주어서 그 많은 배우들의 연기 행진을 즐기는 것 또한 상당한 재미가 되었다. 특히나 황정민의 그 능청스런 사투리 연기는 압권이었다. "아, 지금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등의 명대사(물론 뒤에 가서는 상당히 진지한 명대사를 내놓는다)들도 재미있었고.
 
옴니버스처럼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독립되어 이어지지 않고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그저 스쳐가기도 하면서 하나의 구조물을 형성하는 식의 스토리 전개도 상당히 맘에 들었다. 어떤 데에서는 이런 구성이 지나친 우연의 일치라고도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렇게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는 우연하게 만나고 영향을 주는 쪽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들 간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또 약간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 이어나가는 재미도 쏠쏠하고.(한 예로, 창후(임창정)와 성원(김수로)은 서로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지만 실은 성원이 창후에게 빚을 독촉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서로 격리되어 있는 듯 자기 이야기만 이끌어가는 것보다는 서로의 결정적 순간이 스쳐지나가고 마주치는 것이 현실감을 더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그들의 에피소드가 독립되어 특별하게 취급되는 것보다는, 여러 에피소드가 경계선을 무시한 채 서로 섞여서 벌어지는 것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따로 취급될 만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단지 지금도 어느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을 듯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 이 영화는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예고했던 만큼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갈수록 씁쓸해진다. 각 주인공들이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다 사랑의 상대를 만나서 꿈결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그런 점에서 크게 실망하시리라. 이 영화는 그렇게 가을의 꿈결같은 사랑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어느 정도 판타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오히려 꿈보다 현실을 반영했다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가난과 이혼의 후유증, 먹고 사는 것에 치이고 과거에 치이는 고달픔,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느끼게 되는 소외감, 열정을 갖게 되지만 너무 늦은 건 아닌지 하는 중년의 걱정 등이 그대로 반영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오히려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듯하다. 영화제목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는 말이 혹 반어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의 의미를 비로소 몸소 깨닫게 된다. 이들은 영화 속 일주일동안 특별하게 기억할 만한 멋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날들처럼 똑같이 힘들거나, 아니면 더 힘들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나날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창후(임창정)와 선애(서영희)는 결국 유괴까지 하게 될 정도로 막다른 길에 서게 되지만, 결국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이 그보다 큰 위안이 될 수가 없다. 극장이 문을 닫게 생긴 곽 사장(주현)과 배우를 꿈꾸지만 이미 나이로는 지는 해나 다름없는 오 여인(오미희) 또한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새삼 고마워서 그보다 행복할 수가 없고.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은 오히려 현재 우리들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결국 그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단순히 '사랑'의 위대함 뿐만이 아닌 '삶'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고 이 영화 속에서도 자살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충분히 들 만큼 힘든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산다. 오히려 그런 삶도 고맙다는 듯 그들은 결국 서로를 향해 웃는다. 자신으로 인해 행복해 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고, 내가 보기만 해도 행복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기 때문이다. 말마따나 죽고 나면 정말 내가 영혼이 되서 자유로움을 느낄지 아니면 그저 땅 속에 묻히면 그만일지 모르는데, 그보다는 아무리 나를 코너로 몰아넣는 고난의 상황이 더블, 트리플로 닥쳐도 주변에 나를 바라보며 그래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삶이 훨씬 더 가치 있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이렇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어르신들의 진리를 영화 속 다양한 연령층, 성별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들의 사랑이 멋지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멋지다면서.
 
곽 사장의 극장에서 영화 내내 상영되는 영화 <달콤한 인생>도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달콤한 인생>의 영화 내용은 그 제목과 완전히 반어적인 듯한 의미를 띠고 있지만 적어도 제목은 이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아무리 우리가 하루 왠종일 개똥밭을 굴러도, 인생은 그 자체로 여전히 달콤하다는 것 말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니체의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는 말처럼, 아무리 끔찍해도 삶은 충분히 그 자체로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가르쳐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커플들의 중요성만 일깨워주는 닭살스런 애정영화가 아니었다. 점차 스산해지는 이 가을날에, 이 영화는 단지 옆구리를 뜨시게 데워줄 뿐 아니라 심장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영화였다. 멋진 배우들이 멋진 연기로 보여주는 삶에 대한 멋진 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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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page
좋은 리뷰네요..^^   
2006-09-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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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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