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런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객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사건이 전개될 때 서스펜스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이는 관객들이 위태위태한 캐릭터들에 동화되면서 서스펜스를 짧은 순간이나마 직접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결국 이 때의 서스펜스란 긴장감 등을 포함한 감정의 기복과 통합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관객도, 캐릭터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터지는 폭탄이나 깜짝 등장하는 살인마는 서스펜스와는 거리가 먼 깜짝쇼에 불과하다는 거죠(심할 경우는 깜짝쇼를 넘어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립니다. 자세한 예를 원한다면 <크림슨리버2>의 추격씬에서 기관총 세례의 역할을 참조하시길).
쓸데없이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사람이건 글이건 몸통에 비해 머리가 너무 큰 건 그 반대 경우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데 말입니다. <마인드헌터>는 두 가지를 노린 영화에요. 하나는 살인마를 찾아내기 위한 퍼즐풀이. 닫힌 공간과 제한된 인물, 그 가운데에서 등장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범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과정은 관객들의 말초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역할이죠. 두 번째 노림수는 서두에서 읊은 서스펜스. 이 영화가 선택한 서스펜스 고조의 핵심은 시간제한을 통한 예고 살인입니다. 히치콕이 말한 서스펜스와 일맥상통하진 않지만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과 모든 캐릭터들을 살피는 게 가능한 관객들의 입장을 통해서 그 나름의 서스펜스를 충분히 유도해내고자 합니다.
언뜻 보면 영화가 노린 저 두 가지는 서로 잘 어울려 효과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닙니다. 퍼즐풀이는 문제가 있고, 서스펜스는 기대 이상이니까요. 레니 할린이란 이름이 액션 영화 쪽에 더욱 친숙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사실 뜻밖의 결과도 아닙니다. 서스펜스의 유발은 꼭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어쨌든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의문들은 모두 사건의 퍼즐풀이에서 비롯되며, 그 의문들의 최고 핵심은 '범인이 도대체 언제 그 짓을 다 했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모든 의문들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떠오르는 것들이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서스펜스의 그물에 걸려 곁눈질할 여유가 없습니다. 감독은 영악하게도 배우들과 이런 저런 장치들을 이용해서 관객의 주의를 범인으로부터 분산시키는데 성공했고, 인물들 사이의 의심과 충돌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적절히 유지시켰거든요. 덕택에 미스터리를 풀면서 생긴 찜찜함이라는 불순물은 서스펜스라는 그물로 나름 걸러질 수 있겠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퍼즐풀기도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며 아쉬워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시사회에 이 정도 영화면 횡재지. 1시간이 넘게 어디 가서 이런 긴장감을 만끽해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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