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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이제 좀 담백해지셨네요 아일랜드
jimmani 2005-07-22 오후 11:15:49 1030   [3]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액션 영화 하나는 기똥차게 잘 만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나는 사실 지금까지 마이클 베이 감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사실 <더 록>까지만 해도 참 괜찮았다.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긴박한 전개와 더불어 선과 악이 또렷하게 대립하지 않고 악당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지금도 험멜 장군은 가장 멋진 악당 중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지 않은가?) 쉽게 공감할 수 있어서 보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었다는 점 등때문에 상당히 괜찮게 봤었다.
 
그런데 이후 작품, 특히 <아마겟돈>, <진주만>에서는 이러한 장점들이 많이 사라진 것같아 꽤 실망스러웠다. 두 영화 모두 심하게 미국 우월주의적인 생각이 깔려 있어 미국 바깥 국가 사람으로서 참 기분이 이상했었고, 또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너무 무게를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겟돈>에서 대원들이 슬로모션으로 나오는 장면은 볼 때마다 닭살이었다.) 또 이 두 영화에서는 감독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살리기 보다는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빴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겟돈>에서는 한창 이슈였던 혜성충돌이라는 소재에 가족애를 결합시켜 감동을 주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 아버지의 죽음은 금세 잊은 듯 애인한테 달려가는 딸의 모습에 실망했고, <진주만>은 대작 분위기를 내려 그랬는지 3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으로 승부수를 걸었지만 그만큼 초반 30분 전투신 이후에는 다소 지루했고 세 남녀의 로맨스도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특유의 매력보다는 다소 형식적인 '기름기'가 묻어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번에 감독이 드디어 제리 브룩하이머의 그늘에서 벗어나 드림웍스와 워너브러더스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이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확실히 이전의 기름기가 많이 사라진 것같아 보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 자신이 자신의 재능을 가장 확실히 깨닫고 그걸 극대화시킨 영화라는 생각이 보는 내내 들었다.
 
때는 <블레이드 러너>와 배경이 같은 2019년, 철저한 간부들의 관리(혹은 감시)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진 웰빙생활로 인해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지구오염에서 살아남은 이들. 이들은 매주 지상의 마지막 낙원인 '아일랜드'로 갈 사람을 뽑는 추첨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는 역시 범상한 주인공이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친구인 조던 2-델타(스칼렛 요한슨)과 좀 유유자적할라치면 물속에 빠져 의문의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꿈을 계속 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그래도 자신의 이러한 생활에 의심을 품고 있던차, 조던이 대망의 '아일랜드' 여행자로 선정되고, 링컨은 축하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그리하여 링컨은 밤에 몰래 극비리에 밀폐된 천장 위의 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황당하게도 아일랜드에 간다고 좋아하던 동료들이 무참히 죽음을 당하는 모습. 확실히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링컨은 역시 곧 죽음을 당할지도 모를 조던을 이끌고 탈출에 나선다. 그들은 복제인간들이었고, '아일랜드에 간다는 것'은 자신의 주인에게 필요한 장기나 피부를 제공해준 다음에 말그대로 '폐기처분'되는 것이다.
 
<진주만>이 초반 30분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비했던 오류를 범한 반면, 이 영화 <아일랜드>는 그보다 훨씬 똑똑해졌다. 이 영화는 오히려 초반 30분을 마이클 베이답지 않게 정적으로 이끌어나간다. 물론 순백의 웰빙 컨셉으로 가득한 미래세계의 모습은 대단하지만, 그곳에서 평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저 훑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건 말그대로 '폭풍전야'일 뿐이다. '지금까지 대략 이런 얘기야. 이제 이야기는 충분히 봤지? 이제는 우리의 본격적인 공세를 받아보시지'하는 것처럼, 링컨과 조던이 탈출을 감행한 그 순간부터 숨쉴 틈조차 주지 않는 액션의 향연이 시작된다. 사실, 이런 전형적인 여름 블럭버스터에서 극적으로 탄탄한 스토리라든가 의외의 반전같은 건 찾는 게 오히려 더 고달픈 일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예고편에 많은 복제인간들이 결국 현실세계로 탈출하는 장면이 버젓이 나올 만큼 이미 결정이 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물량의 액션 장면을 얼마나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관객들에게 선보일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200% 만족시킨다. 트럭에서 기차 바퀴들이 하나둘 떨어지며 쫓아오는 자동차들을 굴리고 짓누르며 도로위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순간하며, 주인공들이 매달린 고층 건물의 'R' 로고가 관객들을 겨냥한 듯 둔탁하게 떨어지는 순간하며, 원래 링컨과 복제 링컨이 명품차를 타고 카레이싱마냥 추격전을 벌이는 순간 등 액션 장면들은 끊임없이, 그러나 질리지 않게 등장한다. 하나 등장하고 이제 좀 숨돌려야지 하면 다시 눈이 휘둥그래지게 하는 식의 연출을 통해, 다행히도 그 규모에 나중에 가선 면역성이 생겨 감각이 둔해지게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숨고르기를 하다가 갈수록 결정적인 장면들을 곳곳에서 폭발시키는 것, 그 덕분에 그 액션 장면들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내가 늦게 깨달은 건지는 몰라도 이제 확실히 마이클 베이 감독은 관객들의 호흡을 조절하는 능력에 도를 튼 것 같다. 팍! 조였다 슬~ 풀어주는 능력.
 
주인공들의 면면도 사실 이전부터 꽤 마음에 들었다. 이전 마이클 베이 영화에서 흔히 나왔던 너무 혼자 잘 할 것같은 1인 전사같은 캐릭터도 아닌 듯 싶었다. 근육질의 액션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이완 맥그리거가 주인공으로 나온 것만도 그렇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링컨은, 너무 남성답고 주체적인, 이상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느 순간 소심해지기도 하지만 머리도 적당히 굴릴 줄 아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웃사이더 기질도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어 꽤 개성있게 느껴졌다. 동반주연인 스칼렛 요한슨도 단순히 남자주인공 손만 잡고 다니며 비명만 지르는 수동적 여성 캐릭터라기보다는, 남자주인공의 의지에 적당히 따르면서도 잠시 소심해지려 하면 대신 앞서나가기도 하는(진짜 링컨 집 앞에서 망설이는 링컨 대신 먼저 들어가는 장면처럼) 적당한 여장부 스타일이어서 보기 좋았다. 물론 끝에 가서 영웅의 자리에 오르긴 하지만, 너무 식상하게 일당백으로 다 처리하고 실력을 과시하기 보다는 잠입형, 지능형 스타일이라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간복제'라는 주제는 사실 한국 사람이 보기에 그리 편하기만 한 주제는 아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황우석 박사가 인간배아복제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인간복제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며(아직 근육 단계로까지밖에 성장하지 않은 복제인간들을 양수(?)를 뺌으로써 처참히 폐기처분하는 장면을 보라!) 이렇게 안좋은 거라고 강조하는 듯한 모습에 쉽게 옳다구나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사회적, 윤리적 문제로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결말은 흔한 헐리웃 영화처럼 이상적으로, 영웅적으로 결말을 맺고 권선징악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영화가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그런 사회적 메시지가 주는 아닌 듯 하다. 장마가 끝나고 난 뒤 시작된 이 대책 없는 무더위 속에서 스트레스를 한방, 아니 반방에 날려줄 폭발적인 액션이 주무기인 것이다. 우리 관객들 역시 마이클 베이 감독의 명성을 믿고 그쪽으로 주로 기대해 왔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제 역할을 하고도 충분히 남는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여졌던 미국우월주의같은 것도 없고, 괜히 어깨에 힘주는 장면들도 없다. 오직 관객들의 숨을 죽이며 액션의 극한으로 스피디하게 몰아붙일 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여름내 스트레스는 쫙 풀려 있고 말이다. 역시나 마이클 베이 감독은 경력을 쌓아가면서 우리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꿰뚫고, 뺄 건 뺀 채로 확실히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보여줌으로써 확실한 즐거움을 주니 말이다. 이 감독, 이제 확실히 담백해지셨군. 기꺼이 좋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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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2005, The Island)
제작사 : DreamWorks SKG / 배급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수입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islandmov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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