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여름 극장가는 다양한 소재의 공포영화들로 많은 관객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자극하곤 한다. 더군다나 올해 선보이는 한국 공포영화들은 특히 신선한 소재들로써 그 기대치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제목부터 독특한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 여름 공포영화의 단골 <여고괴담4 - 목소리>, 첼로를 소재로 한 성현아 주연의 <첼로>, 소재부터 섬뜩한 채민서, 유선 주연의 <가발>까지 그 소재부터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관객들을 찾아 온 김용균 감독의 <분홍신>은 분홍색이라는 색깔이 주는 이미지와 신발이라는 소재의 신선함으로 한번쯤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 봤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 하나없는 텅 빈 지하철역, 그곳에 놓여있는 매력적인 분홍신을 한 여고생이 줍는다. 그리고 갑작스레 변해버린 여고생과 이후에 겪게되는 소름끼치는 일들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분홍신>은 그야말로 단순한 공포영화의 전개방식을 따라간다. 저주 혹은 원한을 품은 사물과 그것을 우연히 가지게 되는 주인공, 그리고 그로인해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들과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라는 익숙한 공포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영화 <분홍신> 역시 그대로 밟아가는 것이다. 분홍신을 우연히 줍게되는 주인공 선재와 그 이후 탐욕스럽고 차갑게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이나 분홍신에 대해 유독 욕심을 부리는 딸 태수까지 분홍신으로 인한 두 주인공의 변화는 다른 공포영화에서도 흔히 봐 온 모녀 모티브와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서도 흥미로운 공포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영화 <분홍신>의 공포는 여기까지이다. 분홍신의 등장과 함께 변하는 선재와 태수, 그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사건들, 그리고 분홍신에 얽힌 과거 등 영화는 관객들의 공포감과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재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단순하고, 밋밋한 전개로써 이 모든것들을 하나로 자연스럽게 묶어내지를 못한다. 어느새부턴가 캐릭터는 과장되어가고, 소재가 주는 공포감은 떨어지며 스토리 역시 식상해져 가는 것이다.
여느 공포영화들이 그렇듯 영화 <분홍신> 역시 저주나 원한의 비밀을 풀어가는 기본적인 전개방식으로써 마무리를 짓는다. 중반부터 등장하는 분홍신에 얽힌 과거사는 밋밋한 스토리에서 작은 호기심과 색다른 재미를 준다. 분홍신을 신고 발레를 하는 한 여자, 그리고 항상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시기하는 한 여자의 질투와 탐욕은 현재의 선재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렇게 중간마다 현재와 교차하며 보여주는 과거사가 분홍신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지만 이 역시 부자연스러운 연결로써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채 이야기를 더욱 난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공포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의 개성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는 점이다. 김혜수가 연기하는 선재라는 캐릭터는 시종일관 가라앉고 차가운 모습에서 분홍신으로 인해 도발적이고 탐욕스럽게 변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주는 공포감이나 비밀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선재의 어린 딸인 태수라는 아역 캐릭터 역시 공포영화 속에서 주요한 모습으로 등장하기 보다는 단순히 공포를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렸다. 오히려 과거 속의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켰다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진행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말한 올해 선보일 한국 공포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물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바로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특히, <쓰리>와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차가우면서도 창백한 표정의 연기를 선보였던 김혜수는 이번 영화 <분홍신>에서 다시 한번 창백하면서도 차가운 그녀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언제나 가라앉고 우울한 모습에서 분홍신에 대해서는 유독 집착을 보이는 선재를 연기한 김혜수는 <쓰리>에서 보여준 겁에 질린 연기와 <얼굴없는 미녀> 속 도발적이면서도 차가운 연기를 그대로 선보이고 있다. 영화 <분홍신>은 김혜수만이 돋보이는 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녀의 연기와 캐릭터만이 유일하게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선재의 딸 태수를 연기한 아역배우 박연아양 역시 섬뜩한 표정연기로써 아역배우들이 주는 천진한 공포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영화 <폰>이나 일본영화 <검은 물 밑에서> 등 아역배우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선재와 함께 영화 속 분홍신의 실체를 알아가는 인철을 연기한 김성수는 캐릭터나 연기 모두 많은 아쉬움을 준다.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풀 하우스><사랑한다 말해줘> 등 TV드라마를 통해 특유의 남성미와 이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김성수는 영화 <분홍신>에서 밋밋한 캐릭터와 어색한 연기로써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한다.
아마도 여름 극장가를 기다린 영화팬이라면 어마어마한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소름끼치는 한국 공포영화들에 대한 기대를 한번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선두주자인 영화 <분홍신>은 더욱 주목받는지도 모른다.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보여주었던 김혜수의 공포연기를 기대한 관객들 역시 적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분홍신>은 소재가 주는 호기심이나 공포감을 어느정도 살려가면서 아기자기한 공포감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하고 밋밋한 스토리와 캐릭터, 어색한 전개는 이러한 소재의 신선함 마저도 그 속에 묻혀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알찬 스토리로써 소재가 주는 공포감을 극대화했다면 올 여름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공포영화가 될 수 있었음에 내심 아쉬움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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