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도 개봉하는 대하 서사영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알렉산더>의 실패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채 가시지않은 시기에 개봉한 <Kingdom of Heaven>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오직 감독의 올곧은 평가만이 제대로 살아있고, 나머진 다 개판이었던 <알렉산더>와 비교할수 없으며, 볼프강 페터슨이 요새를 지키는 기병대와 인디언의 싸움처럼 활극으로 만들었던 <트로이>와도 비교할수 없다. 단지, 감독 자신이 만들었던 <글래디에이터>와만 비교가 가능하다. 지금도 2주일에 한번은 어떤 영화채널을 틀어도 하고있는 그 검투사 영화는 이번에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게 다른 제목의 대하서사극으로 탈바꿈하였다.
2. 이미 예고편에서도 충분히 그런 기운을 느낄수 있었지만, <Kingdom of Heaven>의 전개되는 극양상과 스토리를 절정으로 이끄는 영화적 장치들, 그리고 인물들이 가진 이미지는 특히 주인공이 가진 이미지는 <글래디에이터>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마치 <막시무스>의 꿈속에 등장할 것 같은 그 밀밭이 사막의 예루살렘에 왠 말이며, 아랍을 생각나게 하고, 또한 동시에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전혀 다른 그 애잔한 선율들 속에서 난 왜 노예상인에게 잡혀 들려가는 <막시무스>가 생각났을까? 막시무스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권력을 시민에게 되돌리기 위해 로마로 돌아오지만, <발리안>은 죽은 가족을 천상으로 올려보내기 위한 회계와 속죄의 기도속에 역시 백성을 지키기위해 예루살렘에서 칼을 뽑는다.
3.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자기 영화를 세련되게 복제했다고 할 수 있는 리들리 스콧의 역량은 그럼,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의 진정한 노련미는 대답을 <아니오>로 이끌어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번의 그의 영화는 영화적 스토리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결코 복잡한 인간관계와 이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구조에 피곤함을 느끼면서 영화를 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지금 보고 있는 십자군 전쟁이 도대체 몇차이며, 그 예루살렘의 왕의 이름이 뭔지, 살라딘은 도대체 누구인데, 아랍연맹군의 왕이 되었는지 몰라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구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진정한 핵심은 <십자군 원정>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4. 우리가 알아야 할 십자군 전쟁은 <고프리>의 입을 통해, 그리고 <타이베리우스>의 입을 통해, 심지어 <살라딘>의 입을 통해 요약정리해 준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 들으면 별다른 논쟁의 여지없이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의 지식으로 충분히 알아들을수 있으며, 흐르는 물처럼 우리 머리속에 들어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잊혀진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화의 주인공은 일약 대장장이로 살다가 자신이 <에블린의 고프리>영주의 아들인 것을 아는 순간 마치 초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불굴의 기사로 탈바꿈하는 <발리안>이 아닌, 성지에서 종교에 상관없이 살고 있는 평범한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리안을 연기한 <올랜도 블룸>은 바로 이렇게 백성들을 일으켜 세우는 본연의 역할을 유감없이 연기함으로서 지금까지 우리가 볼수 있었던 그의 연기중 제대로 된 역할을 맡았다는 인정을 받았다고 본다.
5. 이 영화는 <트로이>도 보여주지 못했고, <반지의 제왕>의 인형극도 선사하지 못했던, 그리고 <알렉산더>의 어정까는 전투신이 느끼게 하지 못했던 역사속 전쟁의 리얼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별로 긴장감 없는 극전개와 긴 러닝타임에 힘들어했던 관객들에게도 이 10여분밖에 되지않는 그 전쟁장면이 보여준 성공은 충분히 보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였기에 정말 조직적으로, 짜임새있게, 그리고 그래픽과의 유연한 조화를 통해서 정말 우리 눈앞에서 과거 십자군 전쟁이 이렇게 참혹하게 일어났겠구나라는 것을 느낄수 있도록 배려한다.
6. 권력과 종교의 수장들에게는, 지킬 것이 많은 예루살렘이 <천상의 왕국>이자 모든것이었겠지만, 목숨을 부지해야하는 세속의 백성들에게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이 <살라딘>이 <발리안>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여기서 <발리안>과 <살라딘>의 공통점이 나온다.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적 배경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이도 이 영화에 대한 부드러운 이해가 가능했던 것은 감독이 우리에게 결코 꼬지않고, 직설적으로 전달해주는 종교와 전쟁에 대한 인간적 관점이 이영화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십자군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세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들간의 사랑이 <천상의 왕국>을 버려도 될 만큼, 존귀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7. 영화에서 <시빌라>로 분한 <에바 그린>은 정말 잠깐이지만, <팜므 파탈>로서의 자신의 본색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도되지 않은 진정한 의도와 맞물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극을 전개시킨다. 그렇기에 그녀는 천상의 왕국의 주인 행세를 버리고, 세속의 땅에서 <대장장이>의 손을 잡을수 있었겠지.
그리고 그녀가 손을 잡는 순간, 천상의 왕국은 이제 신의 뜻대로,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 방식대로 계속 지속될 것임을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되고 있슴을, 여전히 우리는 그 십자군 전쟁의 멍에가 씌워져있는 갈등의 땅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슴을 보여주고 있으며, 감독도 사실 그것에 대해 별로 할말이 없슴을 우리에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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