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는 1988년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다. 우선은 다른 모든 사항을 배제하고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화에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전에 있던 집에서 장난꾸러기 시게루로 인해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아키라 가족. 이집에서도 역시 아이들이 시게루와 유키는 트렁크 속에, 쿄코는 밤늦게 밖에서 머물다 몰래 새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나마 들어온 집에서도 아키라를 제외하고는 베란다 밖으로 나가서도 안되고, 큰소리로 말을 해서도 안된다. 아키라, 쿄코, 시게루, 유키는 모두 아빠가 다르다. 게다가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아서 학교에도 갈 수 없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보호자라는 의미보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안심이 되는 존재인 듯 하다. 음식, 세탁 등 집안일은 첫째 아키라와 둘째 쿄코가 알아서 한다.
그들만의 작은 공간에서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당분간 집에 못 들어온다며 돈을 얼마 놓고 사라진다. 아키라는 동생들에게 엄마가 일이 있어서 들어오지 못한다며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간다. 돈이 떨어져갈 무렵 엄마가 돌아오고 행복한 생활이 계속 될듯했으나 엄마는 오히려 더 큰 짐을 들고 크리스마스에 돌아온다며 다시 나간다. 학교에도 가지 않는 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공간인 집에서 그들만의 일상을 보낸다. 돈이 다 떨어지고 전기와 수도마저 끊긴 집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린다. 밥은 편의점에서 남은 김밥을 먹고, 물은 공원에서 조달하면서... 엄마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게 된 가지고 있던 돈으로 엄마에게 세뱃돈을 받아왔다며 동생들에게 나눠준다. 이일로 인해 쿄코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게 되지만...
학교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고,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아이들은 아키라가 집으로 데리고 온 아이들과, 이지메로 학교에 가지 않는 사키만이 유일한 친구다. 집안에 한정되어있던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던날 그들의 수줍으면서 기대감에 부푼 표정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집이 남들에게는 냄새나는 곳일지언정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이 머물 유일한 곳이다.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러기위해서는 아이들이 헤어져야 함을 알기에 그들은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들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있는 식물을 하나둘 집에 옮겨와 물을 주고 보살피면서...
버려진 아이들이기에 그들의 삶이 불쌍하리라 어림짐작하고 울기위해 보았던 영화는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모습에 웃음이 아니라 그들의 곁에 누군가기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영화관을 나오게 되었다.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여진 영화는 그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어떤 결과를 보여 주는게 아니라 마침표가 아닌 진행형으로 영화를 마친다. 비록 편의점에서 주는 남은 김밥과 공원에서 조달하는 물로 생활을 이어가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좌절과 고통을 찾아볼 수 없다. 조그만 일 하나에도 기뻐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뿐...
영화에서의 흐름처럼 2002년 여름에 촬영을 시작해서 2003년 여름에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실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춘 공간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가며 다다미에 누워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이 일체 배제된 아이들만의 세계를 담고 있다. 버려져 슬픔에 젖어있을 꺼라 생각했던 우리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눈으로 그들만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눈물이 나와 눈을 적시지는 않지만, 묘한 영화의 분위기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에 묘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허전함일까 아니면 엄마와 어른들의 무관심이 우리의 일면을 보는듯해서였을까... 아마도 아이들의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 천진무구한 웃음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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