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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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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9 오전 1:1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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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이 영화를 작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볼까 결심했었다.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화제성도 있었고 해서 국내에 정식 개봉하기 전에 일찍 봐두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였다. 그러나 1초를 다투는 영화제 예매의 순리를 아직 제대로 몰랐던 나는 특유의 귀차니즘적 여유로 뒤늦게 한번 예매해볼까 하고 봤다가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되는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접하게 되니 뒤늦긴 하지만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네 명의 천진한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제목이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 치고는 심하게 무뚝뚝한 <아무도 모른다>('아무도 몰라요'도 아니고 '다' 자로 끝나는 이 제목은 참 냉정하게 들린다)는 그 제목만큼이나 참 무뚝뚝하다. 아이들의 동심을 쥐어짜내지 않지만, 그 동심은 저절로 마음까지 와닿고 슬퍼하라고 눈물을 추호도 강요하지 않지만 저절로 슬픔이라는 감정이 가슴에 도착하는, 묘한 영화다. 갈색 분위기가 만연한 가을, 한 가족이 도쿄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싱글맘과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아이들-첫째 아키라, 둘째 쿄코, 셋째 시게루, 막내 유키. 집주인에게 아이들이 많다는 걸 들키게 되면 골치깨나 썩힐 게 뻔하므로 엄마는 아이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집안일을 도맡는 아키라와 쿄코를 제외하고는 절대 바깥에 나가지 말 것. 큰 소리를 내지 말 것 등등. 은근히 엄격한 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부대끼는 생활은 넉넉치 않아도 참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돈 얼마와 함께 남겨진 쪽지에는 잠시 집을 비운다는 엄마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리고는 아이들끼리의 생활이 시작. 한달여가 지나 거의 돈이 바닥이 날 때 쯤 엄마는 다시 나타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를 길을 떠나 버린다. 이제는 정말 기약할 수 없는 시간동안 휑하니 남겨진 네 아이들.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야 한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가장 첫번째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감독의 다큐멘터리식 연출이다. 감동적인 음악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조종하려고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마치 아이들이 아닌 것처럼 신들린 연기를 마냥 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기교 없이 아이들의 행적을 쫓고, 음악은 그저 드문드문 나오는 조용한 기타 선율 뿐이다. 아이들의 연기는 마치 실제 생활인 듯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달린다. 이렇게 어떤 인위적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활용한 것이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지 않나 싶다. 요즘 관객들 일부러 감동주려는 티를 팍팍 내는 영화 앞에서는 쉽사리 감동먹지 않는다.-_-;; 아이들의 연기가 발군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첫째인 아키라가 아이들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아키라의 비중이 커진다. 이로 인해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의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키라의 눈빛은 세상 물정을 적당히 모르는 듯 하면서도 세상이 왠만큼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는 듯 진한 눈빛이고, 영화 내내 표정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졸지에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 가장이 된 아이로써,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가득 품고 있지만, 아이들과 놀면서는 그래도 여전히 순진한 아이임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다. 많은 대사를 소화하진 않지만, 그렇게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실은 여러 감정을 품고 있는 표정만으로도 야기라 유야는 가난과 무관심 때문에 마음이 너무 일찍 찌들어버린 아이의 모습을 눈에 선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이 야기라 유야만 연기를 잘했을쏘냐, 그렇지 않다. 나머지 세 아이들 모두 영화에 없어서는 안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쿄코는 그래도 둘째고 장녀이다 보니 약간 어둡고 생각이 많아 보인다. 걸핏하면 벽장 속에 들어가 혼자 있고 싶어하기도 하는 내성적 성격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책임지는 강단은 나름대로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 시게루와 유키는 보다 어린 아이들로써, 영화 내내 참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게루는 소리 지르는 걸 취미로 삼는 시끄러운 아이지만, 언제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나지 않는 밝은 아이고, 유키는 약간 수줍어하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아폴로 초코 앞에서는 언제나 천진한 미소로 화답하는 귀엽기 그지없는 아이다. 아이들 모두가 미소를 잃지 않고 한번 울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이들의 이런 밝은 모습이 오히려 보는 사람 입장에서 슬픔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일관된 밝은 표정과는 달리, 현실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이들이 아직 돈벌 처지가 못되니 한정된 돈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지, 돈이 없으니 전기세, 수도세도 못내니 전기도 안들어오고 물도 끊기지, 아이들의 생활은 하루가 지날수록 더 힘들어진다. 먹을 거리도 점차 변변치 못하게 변하고, 아이들의 청결상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마치 난민처럼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게 된 아이들인데, 아이들은 여전히 웃고 있다. 놀이터같은 곳에 가면 아이들은 화색이 돌며 마냥 놀기에 바쁘다. 생존의 한계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화분에서 싹이 트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서로 부대끼며 놀기에 바쁘다. 이렇게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웃고 있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더 슬프게 다가왔다. 아직 슬픔이라는 감정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에게 신은 슬픔이라는 감정갖고는 모자란 너무 모진 고통을 아이들에게 안겨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이들의 현실을 더욱 비극적으로 몰아가는 데에는 주변의 무관심도 한몫한다. 우리나라의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가난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었다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은 무관심때문에 더 힘들다. 아키라가 아빠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찾아가도, '자기도 지금 형편이 힘들다', '나는 네 엄마랑 할 때 언제나 콘돔을 꼈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집주인은 또 어떤가. 집세 독촉을 위해 집을 찾아와도 '일 때문에 엄마가 출장가셨다'는 아이들의 한마디에 주저없이 돌아선다. 아이들의 어딘가 초췌해보이는 모습, 어지러운 집안 풍경도 관심 밖이었는가보다. 그외 주변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이 아이들을 그저 귀여운 옆집 아이들 정도로만 생각하지 뭔가 사연이 있을텐데도 물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엄마 마저도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어할 시기에 '잘 지내고 있지? 아키라, 너만 믿는다'는 생뚱맞은 편지를 보낸다. 그나마 비정기적으로 음식을 제공해주는 편의점 직원들이 도움이 될 뿐. 이 때문에 이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과 엄마도 모르고 단지 카메라를 쫓는 관객들만 그 존재를 알고 있는, 무슨 실미도대원도 아니고 마치 죽은 사람마냥 지내야 하는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렇게 영화는 예전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더욱 발달한 지금에라도 언제든지 '무관심'이라는 무서운 독으로 인해 이렇게 배를 곯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음을 넌지시 경고한다. 이렇게 보면, 나도 우리도 이 아이들을 '아무도 모르는' 존재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을 보며 슬퍼한다는 것도 나 자신으로써는 부끄러울 뿐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이렇게 아이들의 비극적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세상의 밝은 풍경과 더불어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어떤 불만도 토로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들의 앞에는 더 만만치 않은 고비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힘차고 밝은 모습으로 다 헤쳐나가리라. 어른들의 무관심이 부끄러워질만큼, 아이들은 자기들의 삶을 차곡차곡 지어나갈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속 가사처럼 아이들은 거친 현실로 인해 악취를 몸에 안게 된 보석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악취를 천진함이라는 세척제로 깨끗이 닦아나갈 것이다. 우리의 관심이라는 세제가 거기에 더 더해진다면 더 빨리 깨끗해질 것이고. 영화는 마지막 아이들의 명랑한 뒷모습을 보여주며 당부한다. 당신의 옆집에도 이 아이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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