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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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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오후 7:4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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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로 나오기 훨씬 전부터 대단한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국내에서 장기간 상연되었던 뮤지컬도 대단한 관객 동원을 했고, 완역판으로 나온 소설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번도 이 <오페라의 유령>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다.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고, 노래들도 어느 정도 귀에 익었었지만, 제대로 책을 읽어보거나 뮤지컬을 관람한 적도 없었다. 뮤지컬은 그 관람료에 엄두가 안나 보지 못했고, 책으로 나왔을 당시만 해도 두꺼운 책을 보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던 시기라 읽지 못했었다.
이런 내게, 이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그 명성을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초유의 기회였다. 뮤지컬의 명성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았다는데, 뮤지컬 값의 10분의 일 정도 될 6~7000원으로 볼 수 있다는데 어느 누가 마다할까. 평소 뮤지컬을 고품격 문화생활로 인식하게 되는 형편으로써,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단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옮겨진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에서 느꼈을 법한 스케일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아니, 그 이상이지 않았나 싶다. 무대와 세트라는 아날로그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영화적 기술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적인 환경으로 온 <오페라의 유령>은, 확실히 눈과 귀와 심장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시작은 1919년, 쥐리 부인(미란다 리처드슨)이 지금은 먼지투성이가 된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작은 경매에 참석하고 있다. 극장에서 발견된 각종 물품을 보며, 쥐리 부인은 그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던 49년 전을 떠올린다. 1870년, 풋풋한 소녀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여인 크리스틴(에미 로섬)은 당시 극장 최고의 프리마돈나였던 카를로타(미니 드라이버) 대신에 오페라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는 훌륭한 연기를 해내는데, 그녀의 뒤에는 그녀만의 음악 선생이 있었다. 얼굴은 비치지 않은 채 목소리 만으로 그녀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었던 이, 그는 다른 이들이 흔히 일컫는 '오페라의 유령'(제라드 버틀러)이었다. 어느날, 그녀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팬텀'에게 이끌려 그의 비밀장소로 가게 되고, 그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차츰 드러나게 되는 그의 뒤틀린 내면에 두려워진 크리스틴은 점차 그를 피하게 되고, 거기에 크리스틴의 소꿉친구이자 연인인 라울(패트릭 윌슨)까지 크리스틴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팬텀'의 내면은 더욱 일그러지게 되는데...
뮤지컬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영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원작자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깊이 관여한 노래와 음악들은 흔히 우리가 느껴왔던 원작 뮤지컬의 감성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놓았다. 영화가 1919년에서 49년전으로 돌아가는 순간 '빰~~ 빰빰빰빰빠암~~'하고 울려퍼지는 오르간 소리는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 쥐었다 놓았다하는 강렬한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The Phantom of the Opera(오페라의 유령)', 'All I Ask of You(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 'Masquerade(가장무도회)' 등 시종일관 영화를 뒤덮는 노래들은 극장의 빵빵한 사운드와 겹쳐 그 웅장함과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덕분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노래들은 쉽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매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음악들이 있더라도 배우들이 제대로 소화해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을 것. 다행히도 이 영화의 주인공 배우들의 노래 소화 능력은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국에서 연극을 한 경력이 있는 팬텀 역의 제라드 버틀러는 스크린을 압도하는 장중하고 굵직한 목소리로 팬텀 역에 안성맞춤인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어렸을 적에 성악 무대를 가진 적이 있는 크리스틴 역의 에미 로섬 역시 연약하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여느 뮤지컬 가수 못지 않은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다. 원래 뮤지컬 배우 출신이라는 라울 역의 패트릭 윌슨 역시 가창력이 뛰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이 다른 뮤지컬보다 좀 더 클래식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노래들도 다른 뮤지컬 노래처럼 팝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오페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일부의 언급처럼 이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무대를 장악할 만큼 많이 강렬하지 못한 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님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의 노래 실력은 분명 평균 이상이다. 노래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배우들에게 뮤지컬 배우만큼의 엄청난 가창력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싶다. <물랑루즈>, <시카고> 등 최근에 나온 뮤지컬 영화들 중에서는 일반 배우로선 단연 최고의 가창력을 선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가 <물랑루즈>, <시카고> 등 최근에 나온 뮤지컬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연출 방식이 대단히 '뮤지컬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랑루즈>처럼 퓨전적이고 만화적인 구성도 별로 없고, <시카고>처럼 실제 스토리 전개와 주인공의 노래 스테이지를 분리해서 보여주는 특이한 방식의 전개도 별로 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배경(극장 안이나 지하던전 등)을 봐도, 영화의 배경이라기 보다는 뮤지컬 무대같다는 느낌이 많이 배어나온다. 그래서인지, 이 <오페라의 유령>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는 영화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신에 이 영화는 이러한 한계 안에서 영화로써 펼쳐보일 수 있는 재능을 최대한 펼쳐보인다. 오페라 공연 장면, 가장무도회 장면 등은 뮤지컬 무대에서는 볼 수 없을 영화만의 스펙터클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기에 인물들 하나하나의 심리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잡아줌으로써, 뮤지컬로 봤을 때 자칫 놓치게 쉬운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다 알아볼 수 있고, 긴박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적으로 정적일 수 있는 뮤지컬 무대보다 스토리의 흥미진진함을 한층 극대화시켜준다. 이처럼 이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전적인 양식의 연출을 보여주면서도, 영화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무대 연출을 그 안에 녹여넣음으로써 뮤지컬적인 매력과 영화적인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광기'와 '집착'이다. 선천적으로 기형인 외모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일그러진 마음을 갖게 된 팬텀에게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갈망 뿐이었다. 그런 그의 갈망이 크리스틴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뻔했으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그 갈망은 광기와 집착이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틀게 된다. 이러한 팬텀의 뒤틀린 심리는 그의 불행했던 과거와 겹치면서 한층 더 비극성을 띄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스펙터클함은 장쾌하고 시원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한구석이 우울한 그늘이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웅장한 음악과 무대를 통해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한층 더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추워지는 겨울,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고품격 문화 활동을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이 영화보다 좋은 것도 찾기 힘들 것이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겼다고 해서 영화적으로 재해석했다거나 그런 건 찾아보기 힘들지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고품격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은 충실히 해냈다. 비극적인 사랑, 스펙터클한 무대와 귀를 사로잡는 웅장한 음악, 단돈 6~7000원 갖고 이렇게 럭셔리한 문화 생활하기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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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2004, The Phantom of the Opera)
제작사 : Warner Bros. / 배급사 : (주)팝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그린나래미디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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