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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무작정 버스를 탔다. 돈도 쪼달리는 요즘, 내가 언제부터 이리 용감해졌는진 모르겠지만..어쨌든 보고싶었다. 씨네큐브에 도착하니 조조인데도, 전국 단관개봉인 낯설은 프랑스 영화인데도 사람이 꽤 들었다. 시설이야 나무랄데 없지만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역시 혼자서 총총히 보러갔던 '포르노그래픽어페어'때 생각을 하고 온 내겐 좀 아쉬웠다. 78석 규모의 아트큐브에서 조용히 보고싶었는데 말이다...
솔직히 영활보며 하품도 몇번하고 중간엔 너무 졸려 눈까지 벌리고 보는등^^;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포르노그래픽어페어는 첫 시작부터 범상치않은 스토리가 전개되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었던 것일까? 타인이 취향은 참 일상적인 영화다. 대사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너무 일상적이어서 초반엔 좀 지루한 감도 없지않다. 찬사를 늘어놓을 정도로 만족하진 않았던 영화다. 물론 오락적면에 있어서... 그러나 맘에 든, 한국영화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그 몇개의 장면만으로 충분한 여운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영화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까스텔라가 끌라라에게 마음을 담은 시를 낭송했다가 거절당한 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기댔던 장면이 있다. 아내는 침대에 망연자실해 주저앉아 있는 남편이 황당하다. 하지만 이내 예의 부부의 정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위로를 하며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까스텔라의 고민과 처지는 아내에게 별로 중요치 않다. 아내에겐 이런 낯선 남편의 모습이 잠깐동안만 지속될 소소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깨에 기댄 남편이 아닌 애완견에게 '쿠키 먹을래?' 라고 묻는다. 아내의 고개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리 없는 남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물들의 재치있는 화면배치로 이런 장면을 잡아내다니 놀랍다.
#무장강도를 당한 까스텔라가 마니의 아파트에서 치료를 받는 장면이 있다. 마니가 상처부위에 약을 발라주면서 묻는다,"아파요?" 까스텔라는 '아프지 않아요'라고 한다. 하지만 마니와 몇마디를 주고 받은 후, 이 질문은 똑같이 되풀이된다. 그때 까스텔라의 대답은 '아파요'였다. 정말 고개를 떨구고..아파요..라고 했다. 난 이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상처를 치료하는데 소독약이 따가운가 아닌가를 묻는게 아니다. 끌라라에게 거절당한 까스텔라의 아픔을 마니가 이해하고 그런 마니의 물음에 '아파요'라고 한 까스텔라의 대답은 가슴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마음이 아프다는 걸 의미한다. 상처는 몸에 난 상처일수도 있고 마음에 난 상처일 수 있다. 아픈건 육체적 고통일수도 있고 정신적 고통일 수 있다. 나만이 느낀 것일까? 아니면 다른 관객들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아파요?' "아프지 않아요..' '아파요?' '네..아파요..' 가장 슬펐다. 이 이후로 나도 모르게 까스텔라가 무식하고 주책이고 눈치없는 아저씨가 아닌 따뜻한 감성을 가진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브루노는 집에서 풀륫연습을 한다. 그것도 쇳소리 내가면서...음도 단순히 하나로. 당연히 브루노의 풀륫솜씨는 형편없다 생각했다. 그런 부르노가 안타깝기도 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허를 찔린 순간, 두손 들었다. 그 엉터리 소리같던, 단순히 한 음으로 반복했던 그의 풀륫연주가 정말 관현악단에 쓰이고 있는것이다. 풀륫 못부는 이가 애써 쇳소리 내가며 안간힘 쓰던게 아니라 그 소리 그대로 연주의 한 파트였던 것이다. 와우~이런 반전은 첨이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편견을 교묘히 뒤집는 솜씨, 그속에서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끌라라가 그녀의 친구들이 무식한 까스텔라를 이용하려 한다고 말했을때, 까스텔라는 끌라라를 향해 한가지 묻는다. '내가 정말 그 그림을 좋아한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내 자신에게 묻고있다. 더이상의 생각은 무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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