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75년에 만들어진 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의 리메이크입니다. 솔직히 75년도의 영화를 보지 못해서 리메이크란 표현을 써야할지 아니면 같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불과한지 알 길은 없습니다. 어찌됐든 두 영화 모두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그려놓았음은 분명해 보여요.
그러나 추측해 보건데, 75년 영화와 2004년 영화는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더라도 그 의미나 맛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네요. 당시와 지금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차이가 나는데다가 남성들의 의식 또한 많이 변해가는 중이기 때문이죠.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주도권을 잡아왔던 남성들의 불안감 역시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테니 두 영화가 똑같은 스토리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방송국 사장 조안나(니콜 키드만)가 자리에서 내쫓기면서부터입니다. 새 삶을 살아보기 위해 같은 방송국 부사장이었던 남편 월터(매튜 브로데릭)와 함께 스텝포드란 마을로 이사하게 되는데, 그 마을이 영 이상해요. 남자들은 놀고 즐기고 행복해하며, 여자들은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 남편 시중들기 등에 온 정성을 쏟는, 한 마디로 과거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의 전형이군요. 여성의 사회 참여를 지향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죠.
이제부터 이야기는 뻔합니다. 아주 조금의 스토리 구성 능력과 역시 아주 조금의 사회 분위기 파악 능력만 있다면, 정신적 황폐에서 벗어난 조아나가 스텝포드의 비밀을 풀어 헤치고 깨뜨리는데 영화의 종착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영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를 꿈꾸는 남성들과 그 음모에 휘말린 사람들의 코믹 소동.' 물론 약간의 충격 요법(반전이라고 해도 좋구요)도 존재합니다. 언제나 가장 위험한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라는군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남성들이 지닌 불안감을 느꼈다고 하면 좀 과장이 될까요? 높은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쉽지 않기 마련입니다. 권력과 힘의 맛이라는 게 워낙에 달콤해서요. 그런 달콤함을 수백 년이 넘게 맛본 남성들이 그 자리를 쉽게 내주려 할지 궁금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엔 여성들의 거센 도전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남녀평등이 아닌 여성 상위에 대한 불안이죠. 영화가 시작할 때 조안나가 소개한 두 개의 프로그램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집니다. 성 대결에서 여성의 승리, 남성보다 여성에게 월등히 많이 주어진 파트너의 수.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여성이 주도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남녀평등이 아닌 여성 우위로 파악하고 있는 남성들의 시각을 은연중에 포함한 건 아닐까요?
게다가 영화는 결말에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가 중요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직 개인적인 견문이 좁은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페미니즘 영화는 언제나 여성들의 독립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들에선 남성은 여성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이해가 없는데 무슨 조화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에요. <스텝포드와이프>는 남성적 시각으로 바라본 언저리 페미니즘 영화라는 것. 영화 속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의 몸을 빌려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것처럼 영화 역시 여성 주인공을 통해 남성적 시각의 지향점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죠.
약간 모호한 페미니즘을 담았다고 해서 배우들의 매력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니콜 키드만도 빼놓을 수 없는 배우임엔 틀림없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돋보였던 배우는 클레어 역의 글렌 클로즈와 로저 역의 로저 바트에요. 글렌 클로즈는 과장된 코믹스러움을 마치 원래부터 자기 것인 양 소화시켰고, 로저 바트의 게이 연기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여장 남자 역을 했던 잭 레먼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상적입니다(실제로 닮았어요).
배우들의 연기와 그것을 통한 가벼운 웃음을 얻길 원한다면, 이 영화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듯합니다(단, 스토리의 논리성엔 너무 집착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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