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또 하나의 캐릭터가 스크린에 등장했습니다. 대테러부대 출신이자 전직 FBI 특수 요원인 프랭크 캐슬이 그에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가족을 잃고 복수심으로 다시 태어난 퍼니셔(응징자)죠.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는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그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며, 그의 상대가 부유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회와 법의 한계를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하구요. 즉, 설정 자체에 혼란스런 세계관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말에 대한 응답으로 '신은 지켜보기만 할 것이다'란 말이 되돌아오는 것도 정의가 외면당한 세상을 달리 표현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에 내재된 이 어두운 속성들은 영화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내팽개쳐진 사람들의 발버둥은 영화의 가벼움과 직면해 희석되어지거든요. 그것이 감독의 의도적인 전략인지, 예상치 않았던 불순물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때때로 선사하는 웃음은 분명 감독의 의도임이 틀림없습니다(정말 그럴까?--;). 영화 초반 프랭크(토마스 제인)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장치가 어이없이 무기력해지는 과정이라든지, 군데군데 등장해서 어렴풋이 느낌을 전달해주는 과장된 장면들(예를 들면, 똥폼...)은 감독이 작심하고 마련한 장치인 거죠. 그 같은 특징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조안(레베카 로민 스테이모스)을 포함한 프랭크의 이웃들과 어울려 이 영화의 무거운 설정을 가볍게 하고 약간은 코믹한 분위기까지 내게 합니다. 그리고 <퍼니셔>의 이런 분위기는 자극적이면서 엉뚱한 웃음을 선사하곤 하는 B무비의 감성과도 닿아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문득 '복수'라는 소재 때문에 다른 영화가 떠오르네요. 덴젤 워싱턴이 냉혹한 복수를 펼치는 <맨온파이어>말이에요. <맨온파이어>의 크리시와 <퍼니셔>의 프랭크는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전직 CIA 킬러와 전직 FBI 비밀 요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존재들, 뒤이어지는 잔인하고 냉혹한 복수, 술과 무기 그리고 자살 시도…….
하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요. 덴젤 워싱턴이란 고급스런 배우의 이미지를 등에 업은 <맨온파이어>는 평가야 어떻든 독특한 시도를 한 고급 영화의 길을 걷고, <퍼니셔>는 과거의 방법을 끌어들여 의도적인 B무비 냄새를 풍깁니다. 사실 더 생각할 필요 없이 관객의 선택은 정해져 있습니다. 똑같다곤 할 수 없지만 <퍼니셔>와 비슷하게 B무비와의 공유를 선택했던 <헬보이>가 우리 관객에겐 사정없이 외면을 당했듯이 <퍼니셔>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라 생각되거든요. 더구나 <퍼니셔>엔 잔인함이란 요소까지 담긴 판입니다(<맨온파이어>의 수준에서 잔인하다는 얘기가 나올 상황이라면 <퍼니셔>엔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 의문이군요. 처참하다? 짱 잔인하다?^^;).
하지만... 판에 박힌 듯 하면서도 가끔씩 예측 불허의 방향 전환을 깜짝 선물처럼 포함한 <퍼니셔> 같은 영화도 의외의 재미를 선사할 때가 있습니다. 섣부른 예측일 수 있지만 이 영화, 생명력이 뜻밖에 길지도 모를 일이에요. 극장에서 상영되는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두고두고 소수에게만 회자되는 비운의 숨겨진 영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꼬리말1) 이 글을 읽고 혹시나 해서 극장으로 향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영화에 대한 취향이 아주 별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 편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엄청난 잡식성입니다만...
꼬리말2) 마지막 자동차들의 폭발로 인해 지상에 불길로 그려진 퍼니셔의 상징물은 <크로우>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야 하나요?^^
꼬리말3) 미 프로레슬링의 간판이었던 케빈 네쉬가 러시아 킬러로 등장합니다. 주인공과 코믹, 잔혹으로 어우러진 대판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죠. 음... 그리고 조안이란 인물로 나오는 레베카 로민 스테이모스는 <엑스맨>에서 섹시한 몸매 자랑하며 자기 얼굴은 잘 드러내지 않는 미스틱으로 나오는 배우죠. 혹시 실제 얼굴 궁금해하셨던 분들 한번쯤 극장에 가 보시는 건 어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