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JSA)로 흥행감독의 자리매김을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두번째였다. "복수는 나의 것"은 보고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기회를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복수는 나의 것"의 연장선상에 두어야 한다. 어쩐다 하는 따위의 얘기는 그다지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또한 원작인 일본만화도 보지 못했고, 관람전 사전정보를 철저히 거부하였기 때문에 백지상태로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은 솔직히 너무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다. 자신을 오대수라 소개하며 파출소에서 벌이는 일련의 과정이 최민식 특유의 오버와 겹쳐지며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무엇때문에 잡혀왔는 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단지, 오대수란 캐릭터의 소개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다.
어쩌면 난 초반의 최민식의 연기에서 오래전 "서울의 달"에서의 코믹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민식은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코믹 요소를 자신에게서 완전히 버렸나 보다. 비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와 상반되는 모습도 필요할텐데...
이후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독방에 갇히고, 관객은 그 때부터 오대수와 함께 호흡하고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 그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면 이 영화의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오대수가 갇혀있는 동안 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데.. TV 뉴스에는 자신의 가정이 사라진다. 마치 깊은 바다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듯..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혀왔다.
영화의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 앞으로 몇번쯤은 더 봐야할까? 아쉬운 것은 영화개봉 1주일만에 "반지.. "와 "실미도" 가 거의 모든 스크린을 점령한 상태여서 "올드보이" 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 흥행의 요소만으로 관객들의 영화 선택권을 앗아버린 행태는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칸 수상 이후 재개봉 어쩌고 할 때 솔직히 조금 웃기기도 했고,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또하나의 화제작 실미도... 이 영화와 실미도의 차이점이라면..
주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시킴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올드보이" 쪽이었다고 생각된다. "실미도"의 경우, 많은 캐릭터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힘이들어 관찰자 시점에서 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 그렇다고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고, 단지 내 취향일 뿐이다.
말하자면, 실미도를 보는 중에는 "아...", "저런...!!", "어... 어..." 정도의 감탄사 연발이었고,
올드보이를 보는 중에는 내가 또하나의 오대수가 되어 등에 칼을 맞고, 딸과의 기구한 운명에 눈물 지을 수 있었다는 것. 2003년 최고의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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