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용 감독의 영화에 한번 빠지면 전폭적인 지지를 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은 사춘기 소년의 동화 같은 정서에 있다. 그래서 종종 간과되는 매력이 아기자기한 코미디이다. 분명 과장된 상황이나 캐릭터에 폭소를 터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치 아다치 미치루의 만화처럼 아닌 척 쓰윽 지나가며 눈썰미 빠른 사람만 순간 웃고 넘어가는 맛이 만만찮다. 아다치 미치루의 그것과 다른 점은 매체 속성상 눈치를 채고 웃더라도 “하하”까지만 허용하고 마지막 “하” 할쯤이면 이미 다른 대목으로 넘어가 시치미를 뚝 뗀다는 것이다. <여친소> 전반부에 비장의 스치는 코미디는 여러 개 준비되어 있다. 가령 장혁의 진술에 경찰이 진지하게 그리던 몽타쥬를 카메라가 쓰윽 지나간다든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고 10만원짜리 수표를 꺼내고 "몇 개 더 먹을게요" 한다든지, 전지현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남자친구임을 선언하자 기분 좋은 장혁이 같은 쪽 다리와 팔을 휘저으며 교탁으로 걸어간다든지.
이미 눈치 챘겠지만 <여친소>의 팬으로 곽재용 감독의 팬으로 이 글은 진행된다. 그러니 나와 취향이 비슷한 관객들에게 <여친소>를 진심으로 추천하는 글이다. 이 글이 찌라시처럼 보인다 해도 할 수 없다. 진심으로 글을 쓰지만 글이 통하지 않으면 내 탓일 게다. 적어도 곽재용, 전지현, 장혁으로 대표되는 <여친소>가 내게 진심으로 다가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당신의 이성으로 <여친소>를 보겠다면 나는 말릴 이유가 없다. 과장된 캐릭터, 에피소드 중심의 스토리 전개, 어처구니없는 상황설정,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과잉. 당신의 이성이 지적하는 모든 단점들을 인정해주련다.
그러나 감성은, 감정은, 그러니까 내 눈물은 <여친소>를 시니컬한 표정으로 응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친소>는 사춘기 소년의 동화, 사춘기 소년이 꿈꾸던 바로 그 유치하지만 눈물나는 동화를 그대로 구현해주고 있다. 이언희 감독의 <...ing>가 사춘기 소녀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써내려간 동화라면, 곽재용 감독의 <여친소>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대하던 여자선배를 어느 날 문득 사랑해버린 사춘기 소년이 매일 밤 몇 번이나 끄적이던 슬프디 슬픈, 그래서 행복한 동화이다. 몰래 물 1리터는 부어야 하는 짜디 짠 찌게, 너를 위해 만든 하얀 건반, 책갈피에 그려 넣은 만화, 이제는 기억 밑에 담겨진 그대를 위해 내가 준비하고 싶었던 바로 그 감성이 아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