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를 만드는 최악의 감독이다.
유니버살솔져(92), 스타게이트(94), 고질라(96), 인디펜던스데이(98). 그의 영화를 접할 때면 항상 그 어리버리하고 얼렁뚱땅한 구성과 스토리에 부르르 떤다 그럼에도 필자가 그의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극장입장료 대비 제작비를 생각해 볼 때 안보는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
몇년만의 신작인 새영화 The Day After Tommorow (한국제목:투모로우)는 이 멍청한 감독도 괄목상대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첫번째 작품이다.
빙하가 녹아서 북반구의 난류 흐름을 차단하고 해수온도가 급강하해서 결국 갑작스런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누구말마따나 가설에 불과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허무맹랑한 그의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곧 다가올 인간에 대한 자연의 처절한 응징' 이다.
그동안 이러한 종류의 영화에서 흔히 역겹게 보아왔던 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수호와 영웅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환경보호라는 시의적절한 문제에 대해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투모로우'가 평론가들에게서 '초대형 블럭버스터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911테러와 연관하여 부시의 무능함을 정면으로 욕하는 영화 '화씨911'이 올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쥐면서(우리영화 올드보이가 그 아래 수상) 부시는 의식있는 영화인들로부터 맹렬히 공격받고 있다.
더구나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 (선진국의 지구 온실화가스 감축 협약) 를 지키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관련 장면을 삽입하여 현재 전 미국에 반 부시감정을 부추기고 있으며 민주당 캐리후보는 '환경보호 에는 무관심하고 기업주 들의 이익 증대에만 관심 있는 부시'라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부시의 재선에 걸림돌까지 되고 있는 이 영화는 다행히도 영화보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빙하가 녹아서 쪼개지는 오프닝 씬에서 부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영화적 재미는 녹지않고 단단히 유지되는데 200만 리터의 물을 이용해 해수면이 맨하탄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연출한것이나 정교한 특수효과로 LA가 토네이도 의 습격을 받는 장면, 그리고 전 도시가 순식간에 얼어 붙는 장면등은 일체의 허술함 없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거기다가 양념으로 끼워넣은 동료애와 사랑, 가족애 그리고 액션씬은 부족함 없이 영화를 재미있는 것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얼어붙은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과장됨 없는 애처로운 생존싸움에는 진지함이 묻어난다.
더구나 미국전체가 자연의 재앙앞에 무릅 꿇고 가난한 남미국가에 빌붙어 살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영화의 전례를 생각해 볼 때 혁명에 가깝다.
시원한 극장안에서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한 인류의 꽁꽁언 미래와 마주해보라. 한여름 극장밖을 나서도 녹지않는 서늘함에 놀라게 될것이다.
FILMANIA CROP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