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전지현을 위한… 연출과잉ㆍ억지춘향 스토리 뜬금없어
곽재용감독 이름 `미안해`로 바꿔야
여자친구를 소개한다는, 그러니까 남성 화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제목과 달리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는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친소`에서 전지현은 외딴 성에 갇힌 공주로, 멋있는 여경찰로, 재기발랄한 `엽기적인 그녀 2`로 수많은 이미지 변용에 휩싸여 재림한다.
그것은 곧 전지현이 멜로와 액션물과 코미디의 이형 접합 사이를 장르의 물길을 따라 어떤 통합적인 맥락도 없이 떠돌아 다닌다는 얘기가 된다.
경찰 이야기에 억지 춘향 같은 동화가 끼어드는가 하면, 갑자기 긴 머리 휘날리며 360도 돌아 남자친구를 죽인 원수를 향해 불 뿜는 총알을 발사한다.
그녀는 심지어 죽은 쌍둥이 언니가 있어 정체성의 혼란도 경험했다.
이 모든 것에는 어떤 맥락도 없고 어떤 균질성도 없으며 심지어 캐릭터라는 개념조차 없다.
실상 `여친소`는 영화라기보다 거대한 전지현의 CF 모듬이며, PPL 각축장이자, 또 다른 엽기적인 그녀를 원하는 팬들의 팬터지를 실컷 빨아주려는 무한대의 서비스 정신을 지닌 기획영화다.
전지현은 `엘라스틴`으로 감은 긴 생머리를 하고 엘라스틴 풍선 위에 떨어져 목숨을 건지고, 갑자기 `지오다노` 옷을 입고 나타나 남자친구에게는 김치찌개를 해주며, 자신은 `비요뜨` 요구르트를 꺾어 먹는다.
이를 위해 `비 오는 날의 수채화`서부터 `클래식`까지 나름대로 `순애보`라는 세계를 견지했던 곽재용 감독도 기꺼이 무릎을 굽힌다.
`여친소`는 이즈음 되면 `내 화수분 단지를 소개합니다`로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은 지점에 이른다.
전지현이 동네 보스에게 맞는 장면에도 카메라가 빙빙 돌고,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보낼 때도 카메라는 빙빙 돈다.
`여친소`에는 360도 트래킹 샷만 5번 나온다.
전지현의 얼굴을 더 바싹 팬들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카메라는 기꺼이 그녀의 거울이 돼준다.
이 모든 연출상의 과잉을 넘어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이 영화가 또다시 운명적인 사랑과 숙명을 강조하며, 갑자기 코미디에서 멜로의 진동으로 뜬금없이 관객의 정서를 조작하려 든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두 개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일단 `난다`는 것과 연관된 모든 이미지. 장혁은 죽어 바람이 되겠다고 말하고 풍선과 종이비행기와 팔랑개비가 휘휘 돌며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
중력을 이겨낸 사랑의 숙명. 그러니 멜로로의 전환을 위해 의당 장혁은 죽어야 한다.
억지 춘향의 방식으로라도 말이다.
그 후 수갑이라는 강철 인연으로 묶였던 두 사람은, 피천득의 `인연`이란 수필 한가운데서 전생에도 서로를 사랑했을 법한 기막힌 증거물을 발견한다.
이 영화의 인연과 숙명적인 사랑에 대한 강조는 두 사람의 빗속 데이트 장면만큼이나 유치찬란하다.
전지현은 남자친구가 된 장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전에는 `미안해`라는 말은 없어. 그말 들으려면 미안해로 이름을 바꿔." 정말 이 영화의 기획자와 감독은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여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미안해`라고 말해야 한다.
내 사전에는 `미안해`라는 말은 없다고?
그럼 이번에야말로 곽재용 감독 자신이 감독의 이름을 `미안해`로 바꿀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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