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더 보면,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하류인생이 낮은 평점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임감독님의 99번째 영화에 정일성감독님, 이태원 사장님 세분이 다 모이셨고, 또 내가 젤 좋아하는 조승우씨가 나온대서 크랭크인 할때부터 이 영화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첫 일반 시사회에서 본 하류인생.. 그걸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기분은 사실 좀 찜찜했었다.
배신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에 대한 기대 외에도 내가 생각한 하류인생은 엄숙하고 절제된 분위기에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영화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게다가 영화 평마다의 지적처럼 너무나 건조하게 에피소드가 그것도 지나치게 빠른 흐름으로 나열되어있어서 약간의 당황감까지 받았다.
어제까지 총 하류인생을 4번 보았는데, 이제 단점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내용이 많이 보인다.
한마디로 하류인생은, 협객도, 생건달도 아닌 평범한 남자의 하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생이야기다.
최태웅은 그저그런, 평범한, 우리 주위의 한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좀 나쁜 놈이다.
아무때나 기분대로 막나가고, 바람을 피워놓고도 미안하니까 괜히 큰소리나 치고, 결국은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기도 하고, 굉장히 의리있는것 같지만 한구석에는 남이 이목을 신경쓰고, 가족을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정보부에 가서도 부장에게 욕을 해대고, 술에 취해서는 기자에게 정보부 이중매매를 말했다는 것, 부장 사모님이 술집 여자 알아봐달라고 했을때도 회사 덮어버리자며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그는 굉장히 다혈질이고 기분파에 이성적인 판단력도 약간 부족하지 싶다-_-;
김민선의 극중 대사처럼 최태웅이 하는 일은 남에게 혜택을 주는 일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바른 일도 아니다.
뇌물로 공사를 따내는 최태웅, 돈을 요구하는 정보부나 국회의원들은 모두 같은 나~아쁜 놈들이다.
그런 최태웅이 정보부장이나 국회의원들과는 다르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협잡꾼이나 악한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조승우의 순한 외모와 끝내주는 연기력 때문이었을거다.
살짝 빠르게 진행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그런 약간 한심한 인간인 최태웅이 변해감을 조금씩 보여준다. 정치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에 살고 있던 그가 점점 그들의 권력에 빌붙게 되는건, 두장면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무장공비가 청와대에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는 장면에서 "그럼 공사가 더 많이 생길테니 잘됐다"는 최태웅의 말과 박승문이 최태웅에게 부장 사모님의 부탁;;을 들어주라고 하는 부분..
특히 박승문이 부장 사모님의 그 부탁을 들어주라고 하는 부분에서, 한때는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운동가였던 사람마저도 세태에 흘러 탁해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박승문과 최태웅은 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모습일것이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하류스럽지 않은 사람은 박혜옥(김민선 역)일 것이다.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선생을 계속 하는 그녀...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결국 하류의 길로 들어서는 그녀의 동생 박승문보다 그녀는 훨씬 올곧은 사람이다.
그녀는 세태에 찌들어가는 최태웅을 계속 옆에서 지키며 보호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가장 마지막 장면, 차에 탄 혜옥이 다친 태웅을 안아주고, 카메라는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다리를 보여주는! 그씬을 말하고 싶다.
그녀로 인해 태웅이는 오랫동안 증오해온 그의 어머니와도 화해하게 되고..
물론 그런 그녀의 역할이 여성의 희생을 너무 미화하는것 같다는 느낌을 살짝 받기도 했지만, 그런 희생이, 하류인생 태웅의 삶에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결국은 맑은 인생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것이다.
그시대의 일말의 희망이 그녀로 보여지는건 아닐지.
나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아쉽다.
이렇게 매력적인 내용으로 어필하지 못했다는게, 너무너무 안타깝다-_ㅠ
영화 시간을 한 2시간 정도로 늘리고 편집을 좀 덜했으면 좋았을텐데;;
조금만 더 길게 여유있게 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류인생을 한번 보고 별 반개를 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제발, 한번씩만 더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내용만 느껴보시길.
아참! 신중현씨의 음악들은 어찌나 장면장면에 딱딱 떨어지는지 영화를 음악으로 고스란히 담아내는듯 했고, 엑스트라들 마저도 연기를 너무너무 잘해서 또 너무 좋았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다는 유하준씨와 김학준씨도 너무너무 멋졌는데, 어디서 그런 신인들을 잘 찾아내시는지..ㅎㅎ
특히 유하준씨..... 앞으로 기대할거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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