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과정에는 무릇 '진도'가 있다. 한참을 설레고 만나다보면 안고 싶고 입맞추고 싶은 법, 더 진도가 나가면 육체 접촉 권한까지 부여받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서로 더욱 사랑하게도 되고 미워하게도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영화 '첫키스만 50번째(50 First Kiss)" 에는 이런 과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커플이 등장한다. 사고로 인해 사고 후로부터는 기억이 하루밖에 가지 않는 주인공 루시. 진지한 남녀 관계를 피하기만 하던 바람둥이 헨리는 그런 그녀에게 드디어 운명같은 사랑을 느끼고 눈물나는 노력을 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 어제 일은 난 몰라요 다.
하지만 아침마다 안면까는(일명 쌩까는) 그녀일지라도 끊임없는 그의 노력 덕분에 결국 진도는 조금씩 나가기 시작한다. 비록 매일 같은 일, 같은 말이 되풀이 되고 서로가 같이 공유할 추억이라고는 애시당초 만들어지지 않는 이 미치고 환장할 가슴아픈 사랑도 영화속에서는 눈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루시는 늘 아침마다 새롭고, 헨리는 아침마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할 뿐이다.
가끔은 마누라도 그런 병에 걸려서 어제 자신이 잘못한 일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극중 대사처럼, 오래 사랑하다보면 때론 선택적으로 잊어버리고 싶은 것과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 함께하게 된다.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에 있어 가장 크고 영원한 딜레마인 '잊고 싶은것'과 '기억하고 싶은것', '설레임'과 '익숙함' 에 대해 극단적이지만 우화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쉴새없는 개그와 로맨틱한 감동을 얄미울 정도로 잘 배치한 수작이다.
그녀가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아버지와 오빠, 주변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럽고 반복적인 노력이나 루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이는 헨리의 경쾌한 시도들을 보는 재미는 무척 쏠쏠하다. 게다가 웃음과 감동을 수시로 반복하면서 함께 울려퍼지는 음악과 노래는 이 영화를 선택한 필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안겨준다.
특히 진도가 전혀 나갈것 같지 않던 이 연인들에게 반전의 묘미를 안겨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이스라엘로의 'Over the rainbow / What a wonderful world' 는 영화 내내 웃기다가 막판에 울리는 효과를 극대화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똥구녕에 털났는지 확인하게 한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매우 사랑스런 영화이며 필자가 요 몇년동안 본 유사쟝르 영화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음과 로맨틱함의 한시간 반에 (짧아서 더욱 좋다) 푹빠져서 모든 걸 멈추고 잠시 사랑만 생각해 보기를 빌면서...
Filmania crop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