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곽경택 감독의 [친 구]를 비롯해 흔히 '조폭'을 소재로 만든 영화들이 충무로를 지배했고, 2002년까지만 해도 조폭영화(?)는 극장가에 활개를 폈다. 조폭이 절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는 [달마야, 놀자]라든지 조폭이 고교 졸업장을 얻으려 고등학교로 들어간다는 [두사부일체], 이젠 남자 조폭도 여자 조폭을 등장시킨 [조폭 마누라]가 그 예이다. 그들의 바톤을 이어 [현상수배]를 감독했던 정흥순 감독이 또 하나의 조폭을 소재로 한 [가문의 영광]이란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느 조폭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조폭들의 이야기가 그리 난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코믹, 멜로물이라 하겠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문의 영광'이라 함은 어떤 사람이 굉장히 출세해서 높은 관직이나 지위에 오를 경우나 굉장히 높은 지위의 인물이 그렇지 아니한, 쉽게 말해 소외계층의 집안과 연(緣)을 맺게 되었을 때 그 소외계층의 집안 사람들은‘가문의 영광’이라는 표현을 써서 자신 스스로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있어 이런‘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은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가문’이라고 일컫는 혈통적 차원의 대가족적인 의미의 가족은 그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인권(人權)을 중시 여기는 사회에서 사람을 가지고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 자체 또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말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구시대적 발상이기도 한 [가문의 영광]이란 제목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 길래 '가문의 영광'이란 말을 가감하게 영화의 타이틀로 삼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허나 정작 영화를 보게 되면 그 '가문의 영광'이란 말은 그저 허무하고 초라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영화 포스터에서 우린 이미 알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호남 제일의 조폭인 장씨 가문이 그 가문의 학력 콤플렉스를 해소시키기 위해서 지적, 사회적 배경에 외모까지 완벽한 대표적인 엘리트 남성, 박대서(정준호 분)를 그 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인 장진경(김정은 분)의 결혼을 성사시킴으로써 가문의 학력 콤플렉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너무 제목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평소엔 결백증세가 조금 있고 얌전한 요조숙녀이지만 조폭 집안의 피는 속이지 못하는지 가끔씩 평소의 상반된 성격의 여인으로 열연한 김정은이나 겉으론 세련되어 보이지만 조폭의 힘 앞에서는 어눌하다 못해 무기력한 엘리트를 열연한 정준호, 그리고 이 영화의 재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씨 가문 3형제, 유동근, 성지루, 박상욱의 다양한 캐릭터는 관객으로부터 이 영화에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이후(참고로 필자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모른다) 거의 11년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유동근의 연기가 일품이다.
[가문의 영광]은 코믹영화의 전형적인 코드를 잘 따르지만 황당한 장면이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좀 더 탄탄한 시나리오의 구조가 있었다면 좀 더 괜찮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제되어진 상황들은 억지스럽고 과장으로 쌓인 채 억지로 재미를 이끌어 나가려 한다. 더구나 장인태(유동근 분)와 원혜숙(진희경 분)의 불륜 에피소드는 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영화 자체가 산만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