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 긴장과 재미 속에서 반전을 찾으려는 노력. 훌륭해 보이긴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다가올 수 없음이 이 영화의 현주소이다.
몇 해전 <식스센스>란 영화를 보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지루함과 느슨함을 느꼈지만, 마지막 핵폭탄 한방으로 일시에 정지해버린 느낌을 받았었다. 충격과 함께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그리곤 영화를 또 한번 볼 수밖에 없는 궁지로 몰아넣었다. 못된 성격으로 인해 분명 영화가 보여주었던 반전에 맞지 않는 장면을 하나라도 찾으려는 마음으로 주의 깊게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년에는 <올드보이>란 영화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나라에서 금기시하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못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반전은 <식스센스>의 한방의 핵폭탄과는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재미를 주면서 마지막 반전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허를 찌르는 수많은 표현. 그 중의 한가지 방법인 반전.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재미로 다가오기에 영화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반전만을 가지고, 그 하나만을 노리고 영화를 풀어가거나 이끌어간다면 분명 재미와 충격은 많이 반감됨은 뻔한 이치이다.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과 내용이 뒷받침됨으로써 반전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반전을 시도하며 우리들의 허를 찌르기 위해 다가서지만, 대부분이 실패를 거듭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사실 훌륭한 반전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이 만들어지는 반전 영화에서 이 두 영화를 포함 몇몇의 영화만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사실이라 말해도 될 듯 싶다.
<베이직>. 이는 분명 반전 영화가 확실하다. <베이직>이란 영화는 <식스센스>와 <올드보이>의 가운데 지점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마지막에 거대한 핵폭탄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액션으로 긴장과 재미를 주려고 하고 있다. 가운데 지점에 있으면서 앞의 두 영화가 주었던 모든 장점을 한꺼번에 거둬들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러한 노력은 모든 것이 수포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참 애매한 모양새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대부분의 법정 영화를 생각해 보자. 여러 부류의 법정 영화가 있지만 공통되는 특징은 한가지의 핵심 사건을 절대로 한사람의 눈을 통해서 한 방향으로만 보여주지 않는다. 꼭 여러 개의 눈으로 다양하게 한가지 핵심 사건을 보여준다. 보는 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하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항상 정의는 승리하고, 보는 이 모두에게 옳음에 손을 들도록 유도한다. <베이직>이란 영화는 법정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조금 변화를 시키고 있다. 그 변화는 옳고 그름의 판단. 즉 선과 악의 판단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시작한다. 하나의 사건 속에 진행되는 진실싸움은 선과 악으로 대립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을 위한 하나의 포석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는 분명 흔히 보는 법정 영화의 틀을 벗어난 방법이다.
군인들이 악천후 속에서 훈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건이 발생한다. 이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진행되어질지 뻔한 사실이라 생각한다. 마약 단속반인 하디(존 트라볼타)와 육군 대위 오스본(코니 닐슨)의 진실을 위한 추적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진실을 위한 추적의 흐름은 전형적인 법정 영화의 흐름으로 흘러간다. 훈련 중에 벌어진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이들은 서로 다른 증언으로 우리들에게 줄 세우기를 요구하고 나선다. 눈에 보이는 수법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에 줄을 서서 빠져들 즈음에 영화는 또 이를 거부하고 나선다. 아니 도저히 줄을 선 상태로 지속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상하리 만큼 너무나도 쉽게 선과 악을 결정지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새의 반복으로 어느 한 곳에 줄을 서있기란 아마 불가능처럼 보인다. 이는 분명 마지막 반전을 위한 기초공사였고, 또한 흔히 보는 법정 영화와 다른 면모였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이와 같은 어설픈 수사관의 행동은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게 할 뿐이었다.
<베이직>이란 영화의 반전은 처음에 있다. 영화의 중간은 모두 반전을 위한 가십거리 일뿐 반전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허탈한 기운만이 가득 몰려왔다. 또한 반전을 위한 무의미한 장치들마저도 허탈 속에 포함되어 다가오고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이 시종일관 우리를 우롱하며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지 못하게 한다. <식스센스>는 죽은 자라는 사실을 끝에서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당돌함을 내세우고 있다. <베이직>은 시종일관 우리를 우롱하면서 동시에 끝에서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려 하고 있다. 비록 연결과정이 밋밋한 탓에 어느 하나 뚜렷이 느낄 수 없다는 점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진정 충격적이고 경악을 위한 반전을 위한 사람이라면 선택에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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