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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 적법과 불법 그리고 편법의 대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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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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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 로빈 쿡, 톰 클랜시, 존 그리샴.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각자의 분야에서 발군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깊이 있고 흥미로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과학’, 로빈 쿡은 ‘의학’, 톰 클랜시는 ‘군사’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존 그리샴은 ‘법률’ 관련소설에서 일가를 이룬 작가이다. 우리들과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전문적인 식견을 요구하기에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러한 분야들을 이들은 종사자들의 입장에서 그 이면에 감춰진 비리들과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며 독자에게는 재미와 경각심을 동시에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놓칠 리가 없는 헐리우드는 이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 <런 어웨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존 그리샴의 1996년작인 법정 소설 <사라진 배심원>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노인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말쑥한 명품 수트를 걸친 그는 택시 안에 있는 몇가지 물건만을 보고도 바로 운전기사가 처한 상황과 고민을 맞춰낸다. 노인은 특유의 눈썰미로 법정에서 판결의 중대한 역할을 하는 배심원들을 매수하여 판결의 향방을 ‘감히’ 결정해내기로 유명한 [랜킨 피츠-진 해크만]다. <데블스 에드버킷>(1997)에서 [존-알파치노]이 [케빈-키아누 리브스]에게 했던 ‘이 세계의 신은 법이다’라는 말처럼 배심원을 매수하여 법마저 조종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한 [피츠]의 모습은 자못 당당하고 의기양양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하다. 그가 택시기사에게 날리는 ‘당신이 크리스챤이라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을 망설이는 모양인데, 그냥 아내 말을 들어요.’ 이 한마디는 그의 캐릭터를 강하게 보여준다. 그에게는 편익을 위해 절대선으로 생각되는 종교적 신념이나 정의마저 부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리며 그에게 ‘법’은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정의의 천칭’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벌어주는 ‘저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변호사 [웬델 로-더스틴 호프만]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피츠]만큼 멋스러운 옷을 입지도, 그만큼 충만한 자신감으로 무장하지도 않았지만 [로]는 ‘정의’의 의미를 알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유능한 변호사이기도 하다. 해고당한 한 사나이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들어가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한 피해자의 아내가 총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원고측 변호를 맡게 된 [로]. 그는 총기소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 총기로 인해 한 해에 수만명씩 피해자가 발생하는 데도 엄격한 판매기준없이 밀거래를 묵인하고 있는 총기회사들의 이기적인 행각에 발끈한다. 관련 재판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골리앗을 대상으로 오직 ‘한건(!)’의 판례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윗의 편에 선 변호사 [로]는 정의의 승리를 의심치 않지만, 총기회사 측이 고용한 [피츠]와의 싸움은 버겁기만 하다.
흑과 백으로 명백히 구분될 수 있는 이 경계에 슬그머니 변수가 등장한다. [닉 이스터- 존쿠잭]와 [말리-레이첼 와이즈]는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보여질 수 있는 이분법적인 싸움에 두 얼굴의 회색분자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선한 얼굴을 하고 꽤나 체계적으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이들로 인해 재판의 결과는 더욱 점입가경이 되고 [피츠]와 [로]는 혼란에 휩싸인다.
<런 어웨이>의 백미는 단연 대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흥미진진한 법정 싸움이다. 존 그리샴의 원작들에서 느낄 수 있는 논리 정연한 대화의 기술이 한껏 드러난 이들 장면에서 [더스틴 호프만]과 [진 해크만]은 나이와는 무관하게 파워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여기에 헐리우드에서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존 쿠잭]의 가세는 영화의 재미를 무르익게 한다. 이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분명 우리네의 재판과정과는 달라서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명백한 선악구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전개는 어느 액션 영화 못지않게 박진감이 넘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법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이 말이 내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이란 뜻도, 정반대로 가는 곳마다 난장을 부리는 ‘무법자’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어기지 않으면 날 배신하지 않는 것이 법이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비롯한 법정관련 영화와 여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법’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이상적인 법의 모습을 다루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내가 느낀 것은 세상이 무리없이 흘러 갈 수 있는 물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지만 강한 자의 논으로 물꼬를 틀어 버릴 수 있는 것도 ‘법’의 힘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런 어웨이>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재판소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의 모습을 볼 때면 눈을 가리고 서 있는 이유가 동정심을 두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함이라는 의도와는 다르게 정의를 냉철히 보지 않겠다는 일종의 회피로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아키>
http://www.cyworld.com/emptywall --->제 미니 홈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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