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아있다면 소녀는 선이 더욱 섬세해진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년 역시 멋진 남자가 되어 그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소녀는 죽었다.
이해받지 못할 행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한다면 소년은 소녀를 혼자 가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소녀의 죽음을 통해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복수해야만 했다. 왜?
자신이 아닌 그가 바로 소녀를 죽게 한 장본인이니까...
15년간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주인공은 갇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자의지와는 상관없이
보내야했다. 그리고 15년째 되는 날 그는 풀려났다.. 그런 그에게 남은 건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복수~!
그렇게 사건이 진행되어가고 있을 때엔 나 역시 주인공을 닮아가고 있었다.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시도하고 찾고, 불타오르고...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
소년이 계획한 하나의 의식에 불과했다. '복수'라는 이름에 제단 위에서 이루어진
계획된 연극이였던 것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과연 당신들도 알면서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대사가 허술한 점 이해바랍니다. 너무 와 닿은 부분이라... 양해바랍니다.)
이것은 소년이 주인공에게 이해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소년은 몸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직도 소년인 채로
머물러 있었기에 과거를 주인공의 생활 속에 재현시켜 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알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복수를 끝내고 자살을 선택했다.
여기서 나는 이것은 끝을 알리는 마지막 의식이라기 보다는 복수로서 과거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는..
주인공 역시 자신의 혀를 자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보단 과거를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로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발버둥임 아니었을 까한다.
'나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살인의 도구가 될 꺼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난 결백하다.' 이렇게 말이다.
결국, 내가 이 영화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복수라는 얇은 구성에서의 빠른 전개보다는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대한 기억의 소멸이 가지고 오는 결과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사람은 무엇으로든 상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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