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강재라는 3류 양아치 사내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인천 뒷골목에서 오락실 가게 주인 삥이나 뜯으며 사는 인물이다. 함께 건달세계에 들어온 동기는 조직의 보스가 되어 있지만 그는 그에게 형님이란 말을 붙여야 되는 처지이다. 주먹도 별로고 마음도 약한 그는 아무리 봐도 건달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꿈 없이 이곳저곳 빌붙어 한심하게 살아가는 인물일 뿐...
한편 부모가 돌아가신 후 유일한 친척인 이모네를 찾아 한국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 중국처녀 '파이란' 이 있다. 그러나 이모는 이미 캐나다로 이민간 상태. 오갈 곳 없는 파이란은 불법체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위장결혼을 한다. 그 상대가 바로 강재. 이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조직의 보스가 된 친구가 술김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강재에게 그의 꿈인 배를 사주는 것을 조건으로 대신 감옥에 갈 것을 권유한다. 감옥에 가기로 작정한 강재에게 찾아온 경찰은 느닷없이 이렇게 말한다.
"강백란씨가 부인이시죠? 유감스럽지만 어제 사망했습니다".
얼굴한번 본적없는 부인의 사망은 강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영화 파이란은 밑바닥인생 들의 삶을 통해 희망과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극의 주인공 이강재는 도무지 동정할래야 동정할 면이 없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주연을 맡은 최민식씨도 절대 이강재 같이는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을까..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인물에게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자신을 인생의 쓰레기로 생각한 강재. 그러나 파이란은 자신을 가장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해도 되냐고 했다. 죽은 파이란을 찾아 가면서 강재는 실제로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녀의 처지도 자신과 같아서일까? 너무나 간단하게 죽음이 처리되는 경찰서에서 강재는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이렇게 간단하냐?" 라며 울분을 토해낸다. 낯선 이국땅에서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죽어가야만 했던 그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이곳저곳 빌붙어 먹다가 결국 돈 몇푼에 대신 감옥행을 택한 그. 그런 그가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닷가에서 회한에 찬 눈물을 쏟아내면서 강재는 새로 태어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비정한 현실은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액션과 멜로, 웃을 수만은 없는 코미디가 공존한다. '카라' 로 데뷔한 송해성 감독은 과연 이 작품으로 새로운 평가를 받을 듯 하다. 밑바닥 인생들의 사실적인 묘사나 미학없는 폭력의 모습 또한 중반이후 파이란과 강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사용한 교차편집등은 과연 이 감독이 '카라'를 만든 감독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이다. 그 중에서도 강재역의 '최민식' 은 어떤 찬사를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가 아닌 그 누구가 3류 양아치 이강재역을 이렇게 소화해 낼 수 있었겠는가?
얼마전 여명이 '천사몽'에서 대사도 거의 없는 어색한 한국어 연기로 일관했던 것과 달리 '파이란' 에서의 장백지는 절반은 중국어로 연기하며 영락없는 파이란으로 태어났다. 물론 그렇게 철저히 밑바닥 인생을 살던이가 알지도 못하는 이의 편지 하나로 그렇게까지 변한다는 것이 설득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과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며 친구이후 또 하나의 한국영화 돌풍을 예고하는 듯 하다.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