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까지의 100마일》, 《철도원》 등을 쓴 [아사다 지로]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작가이다. 그것은 우리 영화 <파이란>의 원작인 《러브레터》의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국경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에도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에 속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기보다 삼류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춰온 그가 19세기말 일본의 격변기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스러져간 검객 집단인 ‘신선조’를 소재로 《미부 의사전》이라는 작품을 집필했다.
<바람의 검, 신선조>는 [아사다 지로]의 소설인 이 《미부 의사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이 ‘신선조’의 간부였던 [요시무라 칸이치로-나카이 키이치]의 생애를 취재하려는 기자가 신선조의 생존자를 만나면서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반면,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에서는 ‘신선조’의 일원이자 간부였던 [사이토 하지메-사토 코이치]가 손자를 데리고 간 낯선 병원에서 [요시무라 칸이치로]의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바람의 검, 신선조>를 보다 더 흥미롭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와츠키 노부히로]의 만화 《바람의 검심》은 19세기말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비교적 쉽게 잘 묘사하고 있다. 만화적인 과장된 상상력은 배제하고 역사적인 사실에 주목하면 막부체제가 미국의 세력을 등에 업은 천황파 유신지사들의 입김에 의해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격변기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사이토 하지메]다. 당시 최강의 검객집단이었던 ‘신선조’의 생존자이자 대변인격인 그는 한때 세상을 풍미했지만 이름을 바꾼 채 살아야만 하는 비운의 사무라이다. 어찌 보면 그는 중국의 왕조를 추억케 하는 마지막 황제 ‘푸이’처럼 일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전국시대의 막부를 떠올리게 하는 무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이토 하지메]가 몸담고 있었던 ‘신선조’는 초창기에 지방의 이름 없는 도장의 동문이었던 [곤도 이사미]와 [히지가타 토시죠]가 교토로 흘러들어와 투신하면서 색깔을 분명히 하게 된다. 막부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유신파에 대항하여 보수세력의 첨병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신선조’에는 10개의 부대가 있었다. 이중에 당대 최고의 천재 검객이었던 [오키타 소지]가 이끄는 1번대와 [나가쿠라 신파치]가 지휘하는 2번대, 쾌검(快劍)을 자랑했던 [사이토 하지메]가 맡고 있던 3번대의 전력이 제일 강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들 [오키타], [나가쿠라], [사이토] 세명의 조장은 신선조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 전역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람의 검, 신선조>에서 [요시무라 칸이치로]가 ‘신선조’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서 대적하는 상대가 바로 2번대 조장이었던 [나가쿠라 신파치]였는데 그와 호각의 싸움을 벌였으니 단번에 신선조의 사범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영화로 다시 돌아가보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 ‘신선조’에 시골무사 한명이 들어가게 된다. [요시무라 칸이치로]. 매서운 칼솜씨를 지닌 그는 칼을 들 때를 제외하고는 나무도 순박해 보이는 외모와 더불어 허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게다가 돈까지 밝히는 그는, 무사도를 숭상하는 [사이토]가 보기에는 기백도 뭣도 없는 한낱 속물에 불과하다. [요시무라]를 베기로 결심했던 [사이토]지만 그의 본심을 알게 되면서 적개심을 조금씩 풀게된다. 어느덧 [요시무라]가 늘상 말하는 고향이야기, 고향에 두고 온 자식자랑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들을 감상에 젖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하루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외강내유의 [사이토]와 ‘살기위해 죽인다는’ 외유내강의 [요시무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극중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사이토]는 [요시무라]를 아직까지 경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과거 그 시절부터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무라] 역시 무사도가 몸에 배어있는 [사이토]를 진심으로 존중한다. 내용상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이들 두 명의 캐릭터는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도 중심에 서있다.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이토]와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요시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요시무라]의 속사정에 관한 이야기들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사다 지로]의 문장들이 그러하듯 이 영화 속에서도 가슴이 저릿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족의 부양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장으로 가야만 했던 [요시무라]의 모습은 <철도원>에서 보았던 가족애와 무슨 일이 있어도 묵묵히 할 바를 다했던 철도원 [오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또한 [요시무라]의 잘려진 머리카락을 들고서 오열하는 아내의 모습은 [파이란]의 유분을 바다에 뿌리고 둑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고서 흐느끼는 [강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대세의 흐름을 조명하기 보다는 역사의 흐름, 시대의 흐름, 세파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재주가 탁월한 [아사다 지로]의 내공이 보여지는 장면들이다. 물론 <비밀>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은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역시 원작의 그늘이 너무도 깊이 드리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바람의 검, 신선조>에는 감동의 파도를 이끌어내는 또 하나의 공신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해온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그것이다. 적재적소에서 마음에 큰 울림을 전하는 그의 음악은 사소한 씬이라 할지라도 쉽게 넘어가기 힘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돌이켜 생각해본 것이 있다.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신선조’에 대한 지나친 미화였다. 신선조는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 때문에 각종 소설이나 만화 등의 소재로 즐겨 쓰여 왔다.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인해 미사여구와 더불어 신선조가 실제 모습과는 달리 여러모로 미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선조라는 집단은 잘라 말해 무사들의 집단이기 이전에 불량배들의 모임이었다. 유신지사를 상대로 벌인 테러와 암살을 일삼은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의로운 행위였을지 몰라도 사회적인 통념에서 보면 용서받기 힘든 죄였던 것이다. 신선조의 구성원 중 대부분이 시골에서 칼이 상징하는 폭력만 믿고 상경한 낭인들인지라 무지했고, 개혁이라든지 보수라든지 하는 정치적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막부의 무사로서 쇼군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기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중심을 잃고 도태되어 버린 집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신선조에 매력적인 이야기를 녹여내어 소설을 쓰고, 이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낸 솜씨는 대단하다 할 수 있지만, 지나친 미화에 따른 역기능은 충분히 감안하여 걸러내며 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바람의 검, 신선조>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의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날이 서있는 듯 편협한 역사의식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그들의 또 다른 측면을 보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19세기말 메이지 유신 이후에 곧바로 우리나라에 운요호 사건을 필두로 침략의 마각을 드러냈던 일본의 두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아 가만히 눈물만 찍어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개점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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